지난 기획/특집

[창간 88주년 특별 대담]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턱슨 추기경-주교회의 정평위 위원장 유흥식 주교

이탈리아 로마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5-03-25 수정일 2015-03-25 발행일 2015-03-29 제 293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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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복음화, 정의와 평화를 향하여
턱슨 추기경“한국, 아시아교회 핵심… 지금에 만족말고 복음적 가치 알려야”
유 주교“부와 권력 앞에 작아지기도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다시 힘얻어”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턱슨 추기경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가 3월 10일 교황청에서 본지 창간 88주년을 맞아 아시아 복음화 관련 대담을 가졌다.
‘복음화’는 더 많은 개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수치와 통계 그 이상의 소명이다. 개인의 신앙과 삶, 사회적 조건을 모두 하느님께로 향하게 이끌려는 것이 복음화를 향한 노력이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세우는 일은 복음화 과업의 큰 축이다. 유난히 가난한 이들이 많은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 노력에서 이는 더욱 그러하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Pontifical Council for Justice and Peace)와 한국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현대 세계 안에서 복음과 사회교리를 근간으로 정의·평화를 증진하는 구심점이다. 가톨릭신문은 창간 88주년 특집의 하나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피터 코도 아피아 턱슨(Peter Kodwo Appiah Turkson) 추기경과 한국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라자로) 주교의 대담을 진행했다. ‘아시아 복음화, 정의와 평화를 향하여’를 주제로 기획된 대담은 지난 3월 10일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실에서 마련됐다. 이 대담에서 턱슨 추기경과 유 주교는 “우리 그리스도교는 친교를 나누는 형제를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간다”고 밝히고, ‘복음적 관계’의 중요성과 방법 등에 관해 조언했다. 특히 교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기술 발전 등의 이면에는 ‘하느님의 부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느님의 자리’를 확장하는 노력으로 먼저 복음에 맛들이기와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등을 강조했다.

1951년 출생, 197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주교품을 받고, 2005년 대전교구 교구장에 착좌 했다.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위원, 한국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미바회 총재도 맡고 있다.
1948년 가나 공화국에서 출생, 1975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가나 케이프코스트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바 있다. 1992년 44세의 나이에 케이프코스트 대교구장으로 임명됐고 이어 2003년에는 추기경에 서임됐다. 2009년부터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그리스도교인일치촉진평의회, 세계성체대회위원회 위원 등도 맡고 있다.

▶ 유흥식 주교(이하 유 주교) -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 안에서도 선교를 실천하지만, 전 세계를 향해 복음의 기쁨을 알리는 데에도 노력해왔습니다. 어제(3월 9일)부터 2015년 한국 주교단 사도좌 정기 방문이 시작됐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한국 주교단과의 첫 만남에서도 한국교회는 스스로를 복음화하면서 세계를, 특히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 피터 코도 아피아 턱슨 추기경(이하 턱슨 추기경) - 아시아 가톨릭교회에는 두 개의 중요한 기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로 한국과 필리핀입니다. 더욱이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큰 성장을 이뤘을 뿐 아니라, ‘젊은 교회’로서 더욱 중요성을 지닙니다. 성장은 성령의 선물인데요. 선물을 받은 이는 동시에 사명도 받게 됩니다. 한국은 가톨릭교회를 더 많이 전파해야 할 선물을 받은 나라입니다.

▶ 유 주교 - ‘아시아 복음화’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조언해주시겠습니까. 아시아 대륙은 빈곤과 불의, 불평 등의 상황이 집약된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복음화율 또한 미비합니다. 하지만 복음화가 단순히 교세 증가만을 의미하진 않지요. 신앙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야 합니다. 또 한국은 아시아 복음화의 기대주로 꼽히지만, 실제 복음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풀어야할 과제를 많이 안고 있다고 봅니다.

▷ 턱슨 추기경 - 흥미로운 질문을 주셨는데요. 먼저 기억해야할 점은 우리만이 복음화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슬람도 세상 모든 이를 무슬림이 되게 하려는 프로젝트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현재 집권당이 가톨릭 복음 선포를 막고,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인 힌두교를 받아들이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는 이슬람이 자리 잡은 지역입니다. 이곳에도 교회는 있지만 복음을 전할 수 없고, 학교를 지어도 그 학교에 십자가를 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 주교님들은 “그곳에 현존하는 그들이 바로 교회이며, 그곳에서 사랑과 기쁨, 선을 증거하는 주님께 받은 사명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자유롭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은 상황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어떻게 복음화의 주인공이 되는가는 현재 상황에 영향을 받습니다. 주교님과 같은 교회의 리더들이 그 상황 안에서 어떻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 유 주교 - 복음은 각자의 일상을 통해 ‘증거’하는 삶임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시아에서는 특별히 ‘대화’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화는 아시아의 복음화에서 필수적인 요소인데요. 상대방을 섬기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소통하는 것이 대화의 요지입니다.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고, 상대방의 처지와 환경을 이해하게 합니다. 이어 서로 공감하고 경험을 나누는 과정 안에서 사랑의 나눔, 변화, 쇄신 등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 턱슨 추기경 - 그렇습니다. 변화와 쇄신의 첫 주역은 성령이십니다. 이것이 바탕입니다. 그리고 변화와 쇄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데요. 증거는 이웃들이 있는 바로 그곳,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상황 안으로 들어가서 실천할 부분입니다. 선교사들이 직접 이웃을 찾아가는 것뿐 아니라 자주 만나고 대화할 기회를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유 주교 - 아시아에서 뜻있는 이들은 서구 국가들이 제3세계,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국가들로부터 착취했던 행태 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서구가 제3세계에 깊이 사과하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오늘날에도 서구 선진국들은 국제금융과 다국적기업 등을 통해 억압과 착취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 턱슨 추기경- 사실입니다. 예전엔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을 발견하자, 그곳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땅’, ‘주인 없는 땅’으로 정의하고 원주민들을 착취했습니다. 이러한 발견 뒤에는 시장 경제가 뒤따랐지요. 그 결과 제3세계가 서구 국가들을 의존하는 비중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럼 미래는 어떠해야 할까요? 여전히 수많은 도전들이 있고 이 도전들은 각각 형태가 다릅니다. 저는 아시아의 상황을 볼 때에는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와는 다른 현존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표적으로 아시아 각국은 적어도 자신들의 언어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의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두뇌를 개발시키지도 못합니다. 먼저 자신의 언어를 잘 알지 못하면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남에게 의존한다면 결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발전은 자기 자신의 상황에서 찾고, 자신의 환경을 활용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큰 도전입니다. 나에게 아시아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묻는다면, 사람의 발전이라는 것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이 발전을 위해 교육하고, 지역 자원에 관해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 유 주교 - 다시 한 번 교육과 양성의 중요성을 환기하게 됩니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는데요. 많은 경우, 개발이란 ‘유럽화 하는 것’,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에서도 서구 문명의 거대한 물질문명에 떠밀려 고유한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 그 안에서 복음이 함께 꽃피도록 하는 것은 큰 의무이고 도전이기도 합니다.

▷ 턱슨 추기경 - 개발도상국가들을 보면, 각자가 자신의 것만 추구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비전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벌어들이는 것에 만족한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 유 주교 -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합니다. 그 방식은 희생을, 대화를, 형제애를 뜻합니다. 이는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 턱슨 추기경 -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현대화는 교회에 여러 도전들을 제시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표현을 빌자면, 교회는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은 미비하고, 현대 사회에서 ‘하느님의 부재’는 더욱 심각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경향인데요. 이는 현대화의 한 표시이기도 합니다. 세속화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이 세상의 것, 즉 기술과 발전의 의미는 커져가지만, 더 이상 거룩함이나 하느님의 초월성은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비단 서구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기술이 발전된 나라에서는 쉽게 드러나는 도전입니다.

▶ 유 주교 - 한국에서도 단순히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선과 정의,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한 자리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인간적인 가치들과 생명의 파괴를 초래했지요. 하느님이 없는 곳에 물질주의, 이기주의가 들어온 결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턱슨 추기경 - 단순히 기술적으로나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복음의 영감으로 사회 질서 문제들과 직면해야 합니다. 도구는 ‘사회교리’인데요. 이에 따라 복잡다단한 세상살이의 문제들이 어떠한 형태를 보이든, 우리는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인간 삶의 중심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람을 두어야 합니다. 국가가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지, 사람이 국가를 위해 봉사해선 안 됩니다. 경제도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지, 사람이 경제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유 주교 - 육신과 영혼을 지닌 구체적인 존재로서 그리스도교인들이 복음을 진실되게 실천하는 살아있는 공동체를 이루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바에 따라 사회 안에서 진리와 정의를 증거하는 것이 사람 중심의 활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은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둔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복음에 따라 새 사람을 양성하는 일이 중요하지요.

▷ 턱슨 추기경 -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인간의 통합적인 성장에 관해 자주 말씀하셨는데요. 예를 들어 심각한 환경오염이나 지구 온난화 현상도 우리들의 삶의 방식을 바꾼다면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 유 주교 - 생태적 회심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다음 과제라는 점에 전적으로 뜻을 같이 합니다. 자연 그 자체가 하느님의 피조물 가운데에서도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희생을 가장 많이 당하고 있지요. 우리가 삶의 방식을 바꾸고 소비와 생산의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연과 화해해야할 것입니다.

▷ 턱슨 추기경 - 용기있게 결단을 내리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주교님의 말씀처럼 현대사회의 많은 부조리한 부분, 즉 물질만능주의와 낭비의 문화, 환경 파괴 등은 개개인이 삶의 형태를 바꿀 때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회개를 이뤄, 창조된 모든 것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지요.

▶ 유 주교 -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늘 “복음은, 불편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을 꾸려가는 것”이라고 강조하시고, 복음은 삶의 형태를 바꿔준다고 설명하십니다.

▷ 턱슨 추기경 - 맞습니다. 복음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죠. 현장에 나가 외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복음에 맛들이고 다른 사람과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 유 주교 -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전하듯, 복음을 실천한 기쁨으로 다른 사람을 전염시키며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복음의 기쁨」을 사회변혁을 위한 도구 혹은 각자의 활동을 정당화하는 문헌 등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여러 가르침이 사회참여와 개혁을 중시하지만, 철저하게 신앙인의 자세와 삶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중요하지요. 교황님의 인기에 힘입어 각종 사회교리를 억지로 이른바 활동지침서로 변질시킨다면, 교회에 대한 실망뿐 아니라 신앙을 왜곡시킨 책임도 져야할 것입니다.

▷ 턱슨 추기경 - 또 다른 문제는 공공사회 안에서 교회가 직면하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정치인들은 신앙이 공적인 면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죽음 이후를 염려하고, 지상의 삶을 위해서는 아무 기여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영적인 면과 육적인 면이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말하지요. 하지만 신앙의 주체도 인간이고 정치의 주체도 인간입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해, 공존하는 삶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존하는 삶을 통해 공동선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정치적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과 정치, 곧 영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의 통합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우리 정신은 늘 하느님을 향해 가기를 열망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하느님을 추구하지 못하면 인간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게 되고 때론 길에서 비껴나가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최근 풍족한 서구 사회의 젊은이들이 IS 무장단체(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에 들어가 전쟁을 하려는 모습 등이 불거지게 되지요.

▶ 유 주교 - 거대한 정부, 막강한 기업 앞에서 우리 존재는 초라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럴수록 복음의 논리로, 작은 힘들을 모아 간다면 성령께서 분명히 도와주시리라 확신합니다.

▷ 턱슨 추기경 - 정의평화평의회는 지난 2008년 경제위기가 시작되자, 그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원인은 기술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또 선을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은 많지만,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문제였는데요.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도우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앞서서도 지적했지만, 이러한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유 주교 - 아주 자그마한 관심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음에도 불과하고, 많은 경우 우리는 이를 등한시하고 크고 복잡한 문제를 움켜쥐고 있지요. 물론 사회 체제나 제도의 문제가 불의의 근원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이웃들,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사랑을 갖고 돕지 않는다면, 가난한 이웃들은 또다시 이용만 당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 앞에서 회심, 경제와 환경 구조 등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의 희망은 점차 희박해질 것입니다.

▷ 턱슨 추기경 - 또 다른 면에서 교황청은 개혁의 물살 위에 있는데요. 바티칸 은행 개혁에 관해서는 자주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평신도평의회와 가정평의회도 곧 하나로 합쳐질 것입니다.

▶ 유 주교 - 그러한 움직임을 보면, 보편교회가 인류의 필요성과 지역교회에 더 잘 봉사하고자 하는 뜻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경우, 부끄럽게도 성직자 중심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고, 교황님의 권고 「복음의 기쁨」을 실현하는 작업도 시작단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증거하는 평신도들이 보다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교회가 지원하는 노력도 급선무입니다.

▷ 턱슨 추기경 - 아울러 정의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피해를 입게 되면, 그는 우선 ‘정의를 원한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마치 보복을 바라듯이 말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는 정의롭다고 가르치지요. 그렇다면 하느님의 정의란 무엇입니까?

▶ 유 주교 - 하느님의 자비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거듭 강조해 오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는데 항상,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 턱슨 추기경 - 네. 하느님의 정의는 주교님의 말씀처럼 자비로,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의란 그가 처한 상황과 관계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요. 보복이 아니고 투쟁하며 거슬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만나고 때로는 아프지만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너희는 나를 배반했다”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하셨습니다. 관계를 회복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 중 하나입니다.

▶ 유 주교 -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핵심은 만남의 문화,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밖에 나갔을 때는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다시 공동체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체를 이뤄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이웃 형제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 턱슨 추기경 - 주교님은 한국인이고 나는 가나인이지만, 같은 믿음 안에서 다름은 사라집니다. 복음은 모든 문화, 민족, 언어 등을 뛰어 넘어 공존하는 삶을 살도록 해줍니다. 세상 곳곳의 사람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피터 코도 아피아 턱슨 추기경은 1948년 가나 공화국에서 출생, 1975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가나 케이프코스트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바 있다. 1992년 44세의 나이에 케이프코스트 대교구장으로 임명됐고 이어 2003년에는 추기경에 서임됐다. 2009년부터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그리스도교인일치촉진평의회, 세계성체대회위원회 위원 등도 맡고 있다.

유흥식 주교는 1951년 출생, 197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주교품을 받고, 2005년 대전교구 교구장에 착좌했다.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위원, 한국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미바회 총재도 맡고 있다.

“공동선 위해 노력하며 교회 정론지로 正道 걸어가길”본지 창간 88주년 축하 전해

한편 턱슨 추기경과 유 주교는 이번 대담 말미에서 4월 1일 창간 88주년을 맞이하는 가톨릭신문에 축하인사를 보내며, 교회 언론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턱슨 추기경은 “미디어는 많은 이들에게 정보를 전해주고 이들의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신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지니지만, 또한 목소리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고 “신문 지면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선한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목소리도 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흥식 주교는 “그간 한국 교회와 사회를 연결해주고, 친교가 자라도록 힘써 주신 가톨릭신문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주마가편(走馬加鞭)의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교회내 언론조차 공명성과 투명성을 잃고 목적에 따른 왜곡과 선택을 강행하는 상황에서 가톨릭신문은 계속 정도를 걸어가주길 청한다”고 밝혔다.

유 주교는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언론의 세가지 임무를 설명, 즉 “거침없이 말마디를 깨워내고, 비판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고민을 하고, 모든 이들의 정신과 마음에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탈리아 로마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