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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8주년 특집-아시아 복음화와 한국교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특별취재반 박영호·이지연·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5-03-25 수정일 2015-03-25 발행일 2015-03-29 제 293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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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교회 복사판에 머물러선 안돼… 아시아만의 특성 찾아야
1월 12~19일 스리랑카와 필리핀을 사목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필리핀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는 쉼터를 찾아 아이들을 축복했다.【CNS 자료사진】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노력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표징이다. 하지만 고도의 다양성과 광할한 땅, 엄청난 인구를 가진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더 깊은 성찰과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교회의 아시아 복음화 소명의 실천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아시아 복음화, 제삼천년기 과제

보편교회가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에 거는 기대는 거시적이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제일천년기에는 십자가가 유럽 땅에 심어지고, 제이천년기에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심어졌던 것처럼, 제삼천년기에는 이처럼 광대하고 생동적인 이 대륙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교회는 확신하고 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제6차 총회 연설, 마닐라, 1995년 1월 15일>

하지만 과업은 쉽지 않다. 아시아는 다양한 인종, 문화, 전통을 지닌, 전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거주하는 광할한 대륙이다. 고대 문화와 문명의 요람이자 종교의 발상지로서, 거대 종교들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서구 열강의 침탈을 받은 경험을 지니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부 국가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들은 가난과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비인간적 상황 속에서, 그리고 제국주의와 동반한 ‘부역자들의 종교’라는 낙인을 채 씻지 못한 채, 아시아의 그리스도교는 500년간에 걸친 서구 교회 선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음화율 3%에 못미치고 있다. 소수 종교로서, 선교 활동의 자유가 제약되고, 교회가 박해받거나 극도의 통제 속에서 살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가장 극명한 사례이다.

아시아 복음화의 현실과 여건은 이처럼 매우 복잡다단해서, 결코 지극히 효과적인 한 두 가지의 해법으로 답을 찾아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시아 복음화의 소명 받은 한국교회

지난 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자부심이었다. 누가 보아도 이는 한국교회에 대한 특별한 기대였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역시 아시아 복음화의 중요성과 함께 한국교회가 짊어져야 할 특별한 소명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한국교회는 따라서 세계교회 안에서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아시아에서 다른 지역교회들은 현상 유지에 급급하거나, 신앙의 자유가 제약받아 운신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한국교회는 1970년대 이후 경제 발전, 대규모 교회 행사, 민주화에 기여한 사회적 위상 등으로 놀라운 외적 성장을 이뤘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안정적 여건에 있는 한국교회는 따라서 보편교회로부터 이러한 기대를 모으기에 그리 부족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과연 그러한 기대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을까? 아시아 교회 현실 속에서, 그 막중한 소명에 대해 해법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 그 특별한 소명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한국교회는 이제 막 진지한 성찰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아시아 복음화 노력

수원교구 심상태 몬시뇰은 1989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끝난 직후, 한국교회가 “아시아의 새로운 복음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할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1970~80년대에 이룩한 성과에 자족, 변화와 쇄신에 머뭇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족과 아시아 복음화의 새 복음화를 위한 진지한 연구, ‘한국적이고 아시아적인 교회’를 모범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아시아적인 교회’는 무엇인가?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FABC 총회는 아시아 복음화에 전기를 마련했다. 아시아 주교들은 복음화가 삼중의 대화, 즉 가난한 사람들, 종교들, 그리고 문화들과의 대화라는 세 가지 차원에 깊이 연관돼 있다고 보았다. 이후, 1998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는 FABC의 이러한 기본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두 계기를 통해 아시아 주교들은 제삼천년기 아시아 교회가 더 이상 ‘서구교회의 복사판’으로서는 성장 가능성이 없고, ‘아시아적 얼굴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970년 구성된 FABC는 이후 아시아 복음화의 중심이 됐다. 초기부터 아시아의 그리스도교 교회는 새로운 모습이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에 대한 모색이 이어졌다. 이는 토착화에 대한 요청으로 강조됐고, ‘삼중의 대화’에 들어가도록 촉구했으며, 복음 선포는 이러한 대화와 친교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인식이 아시아 주교들 스스로부터 나타났다. 나아가 아시아에서 ‘선포’로는 부족하고, ‘증거’가 요구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1980년대부터 해외선교에 나선 한국교회는 과거 서양 선교사들의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의 문제를 목격했다. 이제 선교사들은 현지에서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그들의 전통, 문화, 종교와의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지의 선교사들이 체득하고 있는, FABC와 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를 거쳐 확인되고 공감된, 아시아 복음화를 향한 길을 이제는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걸어가야 할 때이다.

대화와 연대, 복음화의 길

그 길을 몇 가지 갈래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아시아 복음화는 한국의 복음화와 다르지 않다. 스스로 복음화되지 못할 때, 신앙의 모범으로서 빛이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 몬시뇰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기반이 자기 쇄신임을 지적한다. “한국교회가 시대의 징표에 유의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구도적 노력을 해나갈 때, 민족과 아시아의 복음화 실현과 아울러 세계교회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을 확신했다.

둘째, 아시아의 교회들과 대화를 통한 연대를 다져야 한다. 지난 해 8월 교황은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교회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대화와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증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는 아시아 교회 사명의 본질이고, 복음화를 위한 연대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필수적 요소이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 신학대학 교수, FABC 전문신학위원)는 “복음화를 위해서는 먼저 만남, 특히 서구가 아니라 아시아 교회들을 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며 이를 위해 FABC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 서구 교회의 모사판이 아닌, 아시아적인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깊이 있는 연구는 모든 사목적 노력에 전제된다. 아시아적인 교회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깊은 성찰 역시 전문적인 연구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외방선교회 김명동 신부는 가톨릭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선교사의 파견 역시 “왜, 어디에, 어떻게, 언제, 무엇을 하러 파견해야 하는지를 먼저 조사, 연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교육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반 박영호·이지연·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