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창간 88주년 특집-아시아 복음화와 한국교회] 기획 연속 인터뷰 (1) 필리핀 타글레 추기경 - 박준양 신부 대담

정리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사진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5-03-24 수정일 2015-03-24 발행일 2015-03-29 제 293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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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신앙 증언에 아시아교회 미래 달렸다”
아시아 복음화, ‘대화’로 출발
다양한 문화·민족과 만남 필요
가난한 이들 울부짖음에
교회가 먼저 귀 기울여야
내적 성장·신앙성숙 위해
이웃교회에 적극 관심을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는 ‘아시아적’이어야 한다. 이는 곧 보편교회와 일치하지만 문화와 종교의 전통적 보화들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어루만지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선포이다. 복음이 제국주의와 함께 도래했던 오명의 역사를 씻어야 함은 아시아 복음화의 또 다른 과제이다. 그리고 결국 아시아 복음화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아시아 교회들의 ‘대화와 연대’로 시작되고 맺어질 것이다.

가톨릭신문은 창간 88주년을 맞아 아시아교회 지도자들과의 연속 인터뷰를 마련한다. 그 첫 순서로 시복식이 열린 지난해 8월 16일, 아시아교회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젊은 지도자인 안토니오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필리핀 마닐라대교구장)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가 만났다.

대화와 연대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움에서 온다. 아시아 각국 교회의 주교회의 의장과 유력한 신학자들, 그리고 사목현장의 탁월한 지도자들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인지를 알려줄 것이다.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는 박준양 신부는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타글레 추기경은 1982년 사제로 서품, 2001년 이무스(Imus)교구장 주교로, 2011년 마닐라대교구장으로 임명됐고, 2012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탁월한 신학적 지식과 현대 문화에 대한 놀라운 식견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 현실에 복음적 관점 제시 노력

-박준양 신부(이하 박) : 추기경님께서는 아시아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며 교회지도자로서 각종 국제회의와 심포지엄 등에서 많은 강연을 하고 계십니다. 추기경님께서 주로 언급하시는 주제는 무엇인지요?

▲타글레 추기경(이하 추기경) :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에서의 활동과, 또 사제, 주교로서의 개인적 사목 체험을 바탕으로,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는 아시아의 현실에 대한 복음적·신학적 성찰입니다.

아시아의 복음화는 대화로부터 시작합니다. 아시아교회들은 FABC 협력과 활동에서 축적된 오랜 경험과 논의를 통해, 아시아 복음화의 가장 효과적인 길은 ‘대화’라고 봅니다. 즉,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 및 종교와의 대화, 그리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아시아 민족들과의 대화입니다.

종교-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가난과 고통이라고 하는 맥락에서 이뤄지는 아시아 민족들의 삶을 신학적·사목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시각과 관점들을 제시하고자 노력합니다. 물론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아시아적’인 방법이 효과적

-박 : 그런 신학적·사목적 성찰의 특별한 방법이나 특징적인 관점이 있는지요?

▲추기경 :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적인 관점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시아 지역의 국제대회에서,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상기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예수님의 ‘이야기’(story)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 발표는 유럽식의 철학적·신학적 사유가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었습니다. 사실 아시아에서는, 논리적 인과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서구 신학적 성찰보다는, 스토리텔링과 내러티브(narrative)가 효과적입니다. 예수님의 스토리는 한 마디로 ‘참 하느님이 참 인간이 되신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교회와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서 모든 보편적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훌륭한 ‘내러티브’가 됩니다.

어떤 경우든, 제게 강연을 부탁하는 주최 측은 제게 ‘아시아적’ 관점과 성찰을 기대합니다. 아시아 복음화를 향한 도정에서도 ‘아시아적’이라는 요소는 필수적입니다.

과거 순교자들 자세 배워야

-박 : 아시아 대륙의 그리스도인 숫자는 아직 미미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복음에 대해서 아시아 대륙이 점차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시아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추기경 : 아시아교회의 미래는 과거의 역사에 좌우됩니다. 순교의 전통이 그 요체입니다. 한국에서만 1만여 명 이상이 순교했고, 중국, 베트남, 심지어 중동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수는 적지만 순교자의 수는 많습니다.

오늘날 피 흘리는 순교가 더 이상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역동적 증언은 더 요구됩니다. 신자 수는 적더라도 증거자는 많아야 합니다. 아시아교회의 미래는, 과거의 순교자들처럼 우리가 얼마나 더 역동적인 증언을 계속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피로써가 아니라, 매일 일상의 삶을 통해서 말입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반드시 숫자적으로 커져야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시아교회가 양적으로 커지게 된다면 물론 하느님께 감사를 하지만, 우리 교회가 양적으로 적어도 역동적 증언이 계속된다면 미래는 밝습니다. 저는 특히 젊은이들, 그리고 사제와 수도자들에게서 그런 미래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풍 피해 필리핀인들에 ‘희망’ 목격

-박 : 아시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교회가 귀기울여야 할 중요한 목소리입니다. 최근의 기후변화로 아시아 지역에서 자연재해의 피해가 점점 늘어나는데,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이런 피해가 집중되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2013년 말 필리핀을 강타한 슈퍼태풍 하이옌의 피해도 그렇고요. 이에 대해 어떤 성찰을 할 수 있겠습니까?

▲추기경 : 필리핀은 매년 20~22개 정도의 태풍을 겪기 때문에 사실 태풍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2013년의 슈퍼태풍 하이옌은 완전히 종류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지요. 가족과 집, 희망과 신앙까지 모두 잃어버릴 만한 비극적 참사였습니다. 피해 지역은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신앙도, 희망도, 사랑도 잃을 이유가 없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이뤄지는 도움 손길은 이웃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따스한 심장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하느님께서는 살아계시다! 여전히 사랑은 우리 곁에 살아있다!”

더 놀라운 것은, 고통받는 이들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앙과 희망의 불씨였습니다. 우리가 매우 걱정을 하면서 피해지역을 방문했을 때, 정작 신앙과 희망의 힘을 불어넣어준 것은 오히려 가난한 이들, 고통받는 이들이었습니다.

국제 구호 단체의 한 봉사자가 경탄하면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들은 여전히 희망할 수 있을까? 어떻게 어린이들이 그 비극을 겪은지 며칠만에 뛰어놀고 웃을 수 있는가? 청년들은 그 폐허 속에서 어떻게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를 수 있는가?”

그들은 여전히 신앙을 잃지 않았고,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오히려 저희에게 선사했습니다.

능동적으로 참여할 한국교회 기대

-박 : 아시아의 첫 방문지로 특별히 한국을 택하여 오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한국교회가 지닌 복음화의 소명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륙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교회들의 ‘연대와 협력’, 그리고 그 안에서의 한국교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한국교회에 어떤 건설적인 조언을 해주실 수 있는지요?

▲추기경 : 누구든, 자기의 껍질에서 벗어나오지 않으면 성숙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 짧은 시간에 이룬 경제 기적은 아시아 많은 나라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IT와 자동차 산업 발전은 놀랍습니다. 유엔 사무총장도 한국인이고, 월드뱅크나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경제기구에서도 한국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과 책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FABC는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연대 기구입니다. 한국교회가 과연 얼마나 여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FABC 회의들이 별도로 통역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한국 안에서 너무 바쁘고, 또 한편으로 내부의 안정감을 떨치고 밖으로 나올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도 없습니다.

각자 자기의 껍질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렇게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고 살면서 무엇이든 서로 주고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모든 이들이, 아시아 지역교회의 성장과 신앙적 성숙을 위해 밖으로 뛰어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인격적인 만남과 우정을 통한 친교, 서로의 뿌리를 알고 배우며, 또 서로에게 뿌리를 내리려는 노력으로 비로소 가능합니다.

대중매체는 복음화 효과적 수단

-박 : 추기경님께서는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교회 지도자로서 알려져 있는데, 특히 필리핀에서는 대중매체와 뉴미디어를 통한 활동으로도 일반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요?

▲추기경 : 주교가 되기 전부터 TV 방송에서 짤막한 묵상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정규 방송이 시작되기 앞서 ‘커피와 기도’(Coffee and Prayer)라는 1분 묵상을 10년 동안 하기도 했어요. 토크쇼에서 정치가, 의사, 학생, 육상선수, 요리사를 인터뷰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5년째, 매주일 제1·2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하는 고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매체에 적극적인 이유는 대중매체가 복음화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한 동시에, 사목자인 제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방송 준비를 하면서 한 주 앞서 사람들의 요구와 갈증을 미리 배우고, 하느님 말씀과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들은 제가 방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잘 압니다. 만약에 제가 방송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들, 말하고 믿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확신하고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놀랍게도 시청자들은 단번에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럴 때 제 방송은 그저 하나의 쇼, 공허한 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념과 실천이 없는 방송을 사람들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정리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사진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