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 허규 신부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입력일 2015-03-24 수정일 2015-03-24 발행일 2015-03-29 제 293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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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르코 14,1-15,47)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예루살렘은 당시 종교의 중심지로 성전이 있었던 도시이지만, 복음서에서 상징적인 의미 또한 갖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공관복음에서 예루살렘을 향하는 예수님의 여정은 마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향하는, 곧 우리의 구원을 향해가는 모습처럼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바로 이곳에서 온 세상을 향한 복음의 선포를 시작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렬과 미사에서 듣게 되는 두 개의 복음은 군중들의 상반된 모습을 잘 표현해 줍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님을 환영하며 길에 자신들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깔고 환호하는 군중들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군중들의 모습은 참으로 조화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시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알아온 제자들이지만 정작 스승이 잡혀갈 때에는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베드로는 결코 주님을 떠나지는 않겠다고 호언장담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과 귀가 두려워 예수님을 모른체합니다. 진실을 밝혀야 할 빌라도는 군중들의 눈치를 보며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사명을 완수하게 될 예루살렘의 입성은 이렇듯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죽음 앞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베드로의, 제자들의,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하나의 사건은 큰 관련이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이 일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복음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삶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고백하고 신앙 생활을 하지만, 때로는 군중과 제자들처럼 현실이란 벽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보다 다른 가치들이 더 중요하게 보여 그것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주위의 눈과 귀가 부담스러워 ‘나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싸여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물론,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따르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자들이 보여준 그 인간적인 나약함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 역시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랬습니다.

이번 주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묵상합니다. 그저 단지 이천 년쯤 전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우리를 위한 것이고, 더 나아가 나를 위한 것임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다른 여러 이유에서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따르고자 결심하고 실천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나와 관련이 없다면 그저 한 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한 주간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 예수님입니다. 다른 것들은 내려놓은 채 이것에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부활 역시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바라고 믿는다면 예수님의 고통 가득한 수난과 죽음에 먼저 함께 해야 합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