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주님 왜 그러셨어요 (사순절을 보내면서)

최경식(토마스 아퀴나스·서울 세검정본당)
입력일 2015-03-24 수정일 2015-03-24 발행일 2015-03-29 제 2937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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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왜 그러셨어요

깎아지는 절벽 위에서 떨어질지도 모르고 뛰노는 아이들처럼

기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철로 위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는 개구쟁이들처럼

소용돌이치는 강물 옆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장난꾸러기들처럼

저희들이 그토록 불안하고 불쌍하고 안타깝고 안쓰러웠습니까

시계 초침 소리가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번민으로 너무도 괴로워

게세마니 동산에서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주소서’ 하셨지요

그대로 고집을 부렸으면 사셨을텐데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셨죠

왜 그러셨어요

당신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서도 그냥 끌려가

조롱 당하고 옷 벗김 당하고 매 맞고 가시관 쓰시고 그러셨죠

왜 그러셨어요

빌라도가 부당한 사형선고 내렸을 때

그 걸 물리칠 수 있는데도 당신은 묵묵히 받아드리셨지요

왜 그러셨어요

머리 위에선 피땀이 흐르고 채찍의 상처에선 선혈이 흐르고

십자가 진 어깨에선 살갗이 벗겨지고 신발 벗겨진 발가락에선 피가 흐르고

지쳐 길바닥에 쓰러진 당신은 병정들의 채찍 맞고 다시 십자가 메고 가다가

또 넘어지고, 또 쓰러지면서 그 돌로로사 좁은 길을 비틀거리며 묵묵히 걸으셨지요

한 마디면 그들 모두를 쓸어버릴 힘이 있었는데도 당신은

왜 그러셨어요

온갖 모욕과 조롱 속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눈물진 얼굴을 봤고

병정들 채찍을 각오하고 군중들 속에서 뛰쳐나와 당신 얼굴을 닦아드린 베로니카를 봤고

당신이 당하고 있는 그 모진 고통에 마음이 아파 통곡하는 부인들을 봤고

그 무거운 십자가를 당신 대신 지고 가는 시몬을 봤죠

이 모든 이들의 슬품과 고통 아픔 당신의 한 마디면 다 끝낼 수 있었는데도

당신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죠

왜 그러셨어요

골고카로 끌려가 두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밖히는 고통 속에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며 부르짖으셨죠

그 순간까지도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청하셨으면 살 수 있었을텐데

당신은 아니하셨죠

왜 그러셨어요

그 고통의 길 안 가겠다고 생각만 해도 그 길 안 가겠다고 손 한 번만 내저어도 당신은 아니갈 수 있었는데

겹겹이 쌓인 군중들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 있어도 외롭기만 했던 그 길

우리들의 죄 무게까지 겹쳐져 더욱 무거워진 그 십자가

어무도 대신할 수 없는 오직 당신 만이 가야했던 육백미터 그 갈보리 언덕 길

죄 짖는 줄도 모르고 뛰노는 저희가 그토록 안타까웠습니까

지옥으로 떨어지는 저희가 그토록 불쌍하셨습니까

큰 죄인만이 가는 언덕에 죄인도 아닌 당신이 가셔야만 했습니까

우리는 어찌하라고요 죄 없는 당신 죽음으로 보내 놓고 우리 어찌하라고요

아 어린양이시어 영원한 나의 구세주시어 영원한 나의 동반자시여 생명의 은인이시어 돌아오소서 어서 돌아오소서

당신이 오실 때까지 어두운 밤 촛불 밝히고 기다리겠나이다

최경식(토마스 아퀴나스·서울 세검정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