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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생활고로 이중 고통, 아르민다 글로리오소 씨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5-03-10 수정일 2015-03-10 발행일 2015-03-15 제 293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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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와 가족들 생계 걱정에 눈물만…
12명 식구 생계 위해 한국행
함께 온 남편마저 강제 출국
수술비 쌓이고 귀국 차비도 없어
“가난해도 가족과 살고 싶어”
암 수술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필리핀인 아르민다씨.
오래 전 한국인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필리핀에서 살던 아르민다 글로리오소(마리아·36)씨는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2011년 남편(37)과 함께 한국에 왔다. 한창 엄마의 뒷바라지가 필요한 큰아들(15)과 작은아들(12)은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생이별을 해야 했다.

이별의 아픔을 뒤로 한 채 미등록 외국인이 된 아르민다씨 부부는 일거리만 있으면 부지런히 일했다. 한 달 내내 일해야 100만 원 남짓한 수입이었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필리핀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다. 외로움과 보이지 않는 차별에 부딪히면서도 가족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행복했다. 서울 혜화동성당 필리핀 공동체에서 매주 드리는 미사도 큰 위안이었다.

그러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타국땅에서 산다는 것이 의지처럼 쉽지 않았다. 2012년 한국에서 딸을 낳은 기쁨도 잠시, 미등록 외국인으로는 딸을 한국에서 키울 수 없어 생후 겨우 한 달 된 딸을 지인에게 부탁해 필리핀에 보냈다.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하랴. 그날 이후로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물 없이 지나간 날이 하루도 없다. 그럴수록 눈물을 감추고 열심히 일했다. 필리핀에 있는 세 남매와 부모, 형제, 조카들까지 12식구 대가족이 아르민다씨 부부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찌 잠시라도 감상에 빠져 있을 수 있을까. 부부는 하루를 1년 같이, 1년을 하루 같이 일만 했다. 그래야 가족이 사니까.

웬일인가. 2013년 10월 남편이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강제출국 당했다. 아르민다씨는 홀로 한국에 남겨졌다. 그 상실감과 막막함은 이를 데 없었다. 아르민다씨는 자신의 두 어깨에 모든 가족을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일했다.

이상하게 몸이 견딜 수 없게 아팠다. 참고 또 참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암이었다. 다행히 자궁절제술을 받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여러 검사와 수술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의료진의 거듭된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르민다씨는 수술을 거부했다. 자식들이 학교에 못 가고 가족들 굶는 모습이 그려져 내 몸이 못 견뎌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심한 병고에 더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이것도 은혜런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는 필리핀 친구가 있어 2평도 안 되는 방을 같이 쓰고 생활비를 친구가 대신 내줬다.

아르민다씨는 필리핀에 있는 세 남매와 가족들을 그리며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내가 살아야 가족도 산다’는 답을 얻었다. 눈물을 흘리며 지난달 수술을 받았다. 2400만 원을 내야했다. 백방으로 돈을 모았다. 그렇게 500만 원을 병원에 내고 1900만 원이 빚으로 남았다. 지금도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정기적인 검진과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수술 전 치료, 검사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한 병원에서도 수술비 관면 혜택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편과 세 남매, 늙은 부모와 형제들이 기다리는 필리핀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비행기 탈 돈도 없어 갈 수 없다. 한국에서 일을 하려 해도 성하지 않은 몸을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막내 딸이 보고 싶어요. 가난하게 살더라도 필리핀에 돌아가 그리운 가족들과 살고 싶습니다. 제발 도와 주세요.”

※성금계좌※

우리은행 702-04-107881

농협 703-01-360446

국민은행 801301-01-58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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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기간 : 3월 11일(수)~31일(화)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