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오빠! 오빠! / 나명옥 신부

나명옥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북한이탈주민 지원분과 대표)
입력일 2015-03-03 수정일 2015-03-03 발행일 2015-03-08 제 293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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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들의 고향에서는 남편이나 애인을 부르는 별칭이 남한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가리켜 ‘세대주’ 혹은 ‘동지’라고 부른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연인이나 부부끼리 ‘자기’,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그들에게는 새롭고 의아하기만 하다.

한 번은 탈북자들과 야구경기를 보러 간 일이 있었는데 야구를 접해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기다란 풍선을 양손에 쥐고 고함을 지르며 맥주를 마시고, 닭다리를 뜯다가 열광하며 응원하는 경기장의 모습은 놀라움의 장소였다. 경기 규칙이 하도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지만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경기를 응원하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응원하는 여성들이 선수들을 향해서 “오빠, 오빠!”, “ㅇㅇ오빠! 파이팅!”하고 외치는 장면을 보고서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닌 글쎄 그곳의 수많은 여성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모습에 처음에는 북한말로 ‘신경환자’들이 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경기장에서 뿐만 아니라 지하철이나 영화관 등 연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말이 ‘오빠’다 보니 탈북자들의 눈은 휘둥그레지기 일쑤다. 그러면 왜 탈북자들은 남한 여성들이 아무나 보고 ‘오빠’라 부르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길까? 북한에서는 친오빠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동지’나 ‘동무’로 통용되며, 기껏해야 상대의 조카이름을 붙여 ‘ㅇㅇ삼촌’ 이라고 부른다. 결혼 후에는 자식의 이름을 앞에 붙여서 ‘ㅇㅇ아버지’라고 부르며 지인에게 소개할 때에는 ‘우리 세대주’ 혹은 ‘신랑’이라고 부른다. 남한에서 ‘아내’라고 하는 북한 말은 참 아름답다. ‘안해’ 즉 ‘집안의 해’라는 의미다. 어감이 따뜻하기까지 하다.

필자가 탈북자들에게 이름을 소개할 때 마지막 ‘옥’자를 쓰는 순간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북한에서 흔한 여성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실제로 이름이 같은 탈북 여성들을 꽤 많이 보았는데, 한 번은 성까지 같은 것이 아닌가! 50평생 성까지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나명옥’이라는 탈북 여성은 필자를 오빠라고 불렀고 사회에 나와서까지도 ‘오빠, 오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짜 오빠’와 세대주가 생겼는지 소식이 끊겨 얼굴도 볼 수 없고 필자가 듣던 오빠라는 말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들이 반세기가 넘게 체험하고 살았던 문화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 왔다고 단시일에 고치기는 어렵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그들 스스로 바꾸고 고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 잘 알려주고 배우고 보듬어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들도 이제는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나가 돼간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독특한 아름다움임을 알게 될 때 시작되지 않을까.

나명옥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북한이탈주민 지원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