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기형적인 교육 구조의 내면 / 양승국 신부

양승국 신부(살레시오회 한국관구장)
입력일 2015-03-03 수정일 2015-03-03 발행일 2015-03-08 제 293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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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총체적 교육의 위기 시대에서 성장기 자녀를 슬하에 둔 부모님들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공교육에 소요되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몇 곱절이나 되는 사교육비를 충당하시느라 허리가 휘청거리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풍토는 정말 독특하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얼마나 특별했으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럽의 한 국영 TV 방송국에서는 우리나라의 한 고3 수험생 하루 일과를 밀착취재 해갔는데,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세상에 이런 일이!’였습니다.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은 다들 한목소리로 ‘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피 말리는 경쟁구도 속에 살아남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이 땅의 청소년들입니다. 또한 왜곡된 교육 구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은 더 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교육 구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청소년들을 끔찍한 세월로 몰고 가는 비인간적인 교육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기형적인 교육 구조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봤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의 과도한 욕심과 이기심, 사교육을 부추기는 교묘한 상술, 그리고 저를 포함한 교육계 종사자들의 무책임과 게으름이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비인간적인 교육 제도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정서적, 심리적 압박과 그로 인한 왜곡된 가치관은 미래 우리 사회를 암담하게 만들 것입니다. 한창 꽃피어나야 할 그들이건만 엄청난 무게의 십자가를 하나씩 등에 지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 교육철학의 상실, 설설 기는 공교육, 하늘 높이 치솟는 사교육, 교육의 총체적 위기 상황, 그로 인해 우리 청소년들은 채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아이와 피시방에 갔을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평소에는 잔뜩 위축되어 있던 아이였는데 피시방에 들어가자마자 얼굴에 생기가 돌고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뭘 하는지 힐끗 넘겨다봤더니 전투를 시작하더군요. 현실 세계 안에서는 모든 것이 꼬이고, 모든 것이 불만족이었는데, 가상전투가 벌어지는 게임 세계 안으로 들어가니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제왕이 되었습니다. 무수한 목숨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절대 권력자가 되어버리더군요. 그러나 정해진 시간이 종료되어 피시방을 나오는 순간 아이는 어느새 의기소침한 예전의 아이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자화상입니다. 가상세계를 벗어나는 즉시 암담한 현실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짜증 나는 일과와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삶을 짓누릅니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들은 자기만의 세계, 모든 것을 스스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꽃 같은 우리 청소년들의 얼굴을 어둡게 만드는 이 비정한 교육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봐야겠습니다.

이토록 열악한 교육풍토 속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불사르고 있는 고마운 스승들을 만납니다. 한 다정다감한 선생님을 뵙고 참으로 기뻤습니다. 아이들보다 1시간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리는 스승입니다.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한 아이들을 날마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스승입니다. 그분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홀로 고립된 섬이 아님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매일의 출근길이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아이들의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제겐 가장 좋은 보약입니다.”

1985년 입회, 1994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전공했다. 서울 대림동, 대전 정림동 수도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관구 수련장, 부관구장을 거쳐 지난해 1월 관구장에 임명됐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승국 신부(살레시오회 한국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