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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특별기획] ‘가정사목과 복음화’ 5. 결혼과 이혼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5-02-24 수정일 2015-02-24 발행일 2015-03-01 제 293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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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의문 던지는 청년들에게 가정과 생명 탄생의 가치를
실패로 고통받는 가정엔 아픔 이해하는 사목적 배려를
명절은 싱글들에게는 고역이다. 올해 설도 마찬가지였다. 박모(37)씨는 설 명절 밥상에 모인 친척들의 “언제 결혼할꺼냐?”는 질문에 일일이 대꾸하는 것이 힘겹다. 그는 대학교 시간강사로, 교수를 꿈꾸지만 현실의 벽이 높아 허덕거리느라 결혼은 꿈도 못꾼다. 30대 초반까지 학생 신분이었고, 학위를 땄어도 안정적이지 못한 탓이다. 3년째 쥐꼬리같은 시급으로 편의점을 전전하는 대학 친구보다는 낫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세대를 부르는 자조적 호칭, ‘88만원 세대’는 ‘삼포세대’라고도 불린다. 연애, 결혼, 출산은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는 핵심적인 요소지만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는 포기해야 할 ‘사치’로 여겨진다.

결혼이 ‘유예’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초저출산현상 지속의 원인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10년마다 2.3세씩 높아졌다. 즉, 1992년 24.9세에서 1997년 25.7세, 2005년 27.7세, 2013년에는 29.6세로 30세에 육박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는 조금 더 올라가, 2013년 남성은 32세, 여성은 30세가 초혼 연령으로 파악됐다.

저출산이 앞으로는 국가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 면에서 정부는 인구 위기 대응 방안을 고심한다. 복지부가 그 핵심으로 간주한 것이 만혼 문제이다. 정부는 2월 6일 청와대에서 가진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내년부터 추진할 저출산 대비 정책 방향의 핵심을 ‘초혼 연령 낮추기’로 잡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젊은이들이 결혼까지 가는 길에 놓인 대학 입학, 취업, 그리고 결혼 자금 확보라는 세 가지 문턱을 낮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을 포함한 사회 경제적 현실이 해소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혼, 못하거나 안하거나

그런데,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가 오로지 경제적인 문제탓일까?

지난해 10월, 가톨릭대 성심국제캠퍼스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주제로 제4회 가톨릭 인본주의 국제포럼이 열렸다. ‘88만원 세대의 사랑과 결혼 문화 분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금윤(연세대 학부대학) 박사는 “자의식이 강한 삼포세대는 번거로운 관계 상황을 벗어나 자유롭고 자족적인 삶을 지향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며 ‘어려운 관계’가 주어지는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도 이들을 결혼으로 이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기업에 근무해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김모(34·여)씨. “혼자서 독립적이고 여유있는 생활이 가능한데 왜 결혼에 목을 매야 하나요? 아이까지 낳으면 직장생활도 포기해야 하고, 결국 내가 지금 누리는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포기해야겠지요. 생각하기 싫습니다.”

결혼을 기피하거나, 혹은 최소한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 사고방식이 젊은이들 사이에 일반화됐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전국 미혼남녀 대상 ‘결혼 및 이혼 인식보고서’에 의하면,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긍정과 부정이 34.2%로 팽팽하게 맞섰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대답이 31.6%로 나타났다. 결국 세 명 중 한 명만이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43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라는 대답이 56.35%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이유에 대해서는 ‘주위에 결혼 후 생기는 문제점을 많이 봐서’가 38.29%로 가장 많았고, ‘싱글의 삶을 즐기고 싶어서’(25.23%), ‘누군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17.14%), ‘가사와 육아에 자신이 없어서’(12.28%),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7.06%)의 순으로 나타났다.

결혼은 줄고 이혼과 재혼은 늘고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인식이 줄어드는 만큼, 이혼은 늘어났다.

지난해 말 결혼했던 유모(32·여)씨는 불과 석 달만에 이혼했다. 4년이나 연애 후 결혼했지만 생각했던 결혼 생활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맞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평생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 1~11월 결혼은 27만1000건, 이혼은 10만5000건으로 집계된다. 하루 평균 317쌍이 이혼했다.

한국사회의 이혼 건수는 2003년 정점을 찍은 뒤 완만하게나마 감소 추세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결혼이 줄어든 탓일 뿐 이혼율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이른바 ‘황혼 이혼’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혼인지속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 건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재혼 건수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혼에 대한 젊은 층의 생각은 앞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을 예상하게 한다. 앞서 인용한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조사에서 미혼 남녀 73.8%는 “이유가 있다면 이혼할 수 있다”고, 54.8%는 “행복하지 않다면 이혼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전통적인 태도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분명하게 변화했음을 각종 통계수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분명히 현대인들은 교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르침들, 가정과 관련해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 자녀 출산과 성(性)에 대한 가르침 등에 대해서 다른 입장과 태도를 갖고 있다. 교회의 가정사목이 더 어렵고 힘들어지는 대목이다.

상처 입은 가정에 대한 공감과 배려

프란치스코 교황과 보편교회가 가정과 가정사목을 주제로 연이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를 개최하는 이유는 오늘날 가정이 처한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위기의 가정을 구해야 한다는 사목적 긴급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교회는 가정에 대한 사목적 접근에서 단지 교회의 가르침에서 가정이 엇나가고 있다는 단죄나 판단에 초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교회는 오히려, 참된 사랑과 애정이 결핍된 가정들 안에서,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쾌락주의, 물질주의에 매몰되면서도 여전히 혼인과 가정의 소중한 가치, 무조건적이고 따뜻한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갈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가정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연민과 책임을 느끼고 있음을 피력한다.

별거 부부나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혼인무효소송 절차를 무료로, 간소하게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점도 상처 입은 가정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서 비롯된다.

한국교회가 지난해 세계주교시노드 준비를 위해 교황청에 제출한 응답서는 이와 관련된 한국교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은… (다시 성사생활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묻는다. 혼인장애에 대해 언급하면, 대부분은 교회가 아픔을 얻고 혼인에 실패한 신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지 왜 막느냐고 하거나 교회의 이혼 금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처사라고 비난한다. 혼인장애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성사의 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갈망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그 때문에 교회를 등지는 신자들도 있다.”

결혼과 애정생활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충분히 인식하도록 할 과제와 함께,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온전한 가정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목적 배려를 깊이 고민하려는 것이 지금 교회가 하려는 일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