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산청 성심원, 한센인 시 모임 첫 돌

이도경 기자
입력일 2015-02-24 수정일 2015-02-24 발행일 2015-03-01 제 293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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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깊은 사연들 ‘시’로 나눠요”
2월 13일 첫 돌을 맞은 산청 성심원 시 모임에서 한센인들이 시를 읽고 있다.
“다른 이름의 나무들 각기 다른 철에 / 각기 다른 꽃을 피우지만 / 첫 눈이 오면 그 나무들은 / 다 같이 흰 꽃만 피우는구나.”

시 모임 회장인 하인식씨가 자신의 시 ‘첫 눈’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내리고는 참석자들과 함께 눈이 쏟아져 고생하던 옛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눈이 오면 세상 모두가, 우리의 상처까지도 덮여져 모든 것이 깨끗해진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한센시설 산청 성심원(원장 오상선 신부)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한센인들을 위한 ‘시 모임’이 시작됐다. 성심원과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가 MOU를 맺고 김성리 교수의 자발적인 참여로 첫 선을 보인 시 모임은 벌써 첫 돌을 맞았다.

처음에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시 모임은 한센병력으로 입은 상처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삶을 돌아보고 표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김성리 교수는 “특정 시인의 시를 읽고 마음에 품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그 여운으로 창작한 시들을 다음 모임에서 발표하고 다시 이야기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했다”며 “3개월 정도 진행되자 더 이상 시인들의 시를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회원들의 시가 넘쳐났다”고 말했다. 이번 달부터는 노래로 만들어진 시를 선정, 노래를 듣고 시를 읽으며 시와 시인에 얽힌 일화를 듣고 회원들 이야기를 이어가는 ‘시와 음악이 있는 토크쇼’를 진행하기로 했다.

한센인들의 시 모임에는 오랜 세월 한으로 맺혔지만 누구에게조차 이야기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차곡차곡 쌓여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고 있다. 특히 2014년 9월부터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인문도시지원사업’의 지원을 받고 있어, 앞으로는 더 풍성한 모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시 모임에서 탄생한 60여 편 시들은 곧 시집으로 발간돼 세상 밖으로 나올 예정이다.

오상선 신부는 “삶에 대한 고뇌가 많았던 어르신들은 이미 시인들이셨다”면서 “시 모임은 이분들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도와준 작업이 됐다”고 말했다. 또 “이 시들이 우리들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소중한 기록과 자료로 남겨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