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사랑받는 아들 / 허규 신부

허규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입력일 2015-02-24 수정일 2015-02-24 발행일 2015-03-01 제 2933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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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마르코 9,2-10)
갈릴래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즈라엘 평야가 있습니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곡창지대로 사용되는 이 평야의 끝자락에 타보르 산이 위치합니다. 이 산 위에서 바라보면 이스라엘에도 드넓은 평야 지대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타보르 산은 전통적으로 오늘 복음에서 읽게 되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곳엔 현재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기념하는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선 공통적으로 ‘높은 산’이라고만 언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이 높은 산이 어디인지 많은 논쟁 끝에 마태오와 루카에서 전하는 일주일 정도의 여정에 따라 타보르 산을 거룩한 변모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아주 간략하게 표현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옷이 하얗게 변하고 구약의 가장 중요한 예언자로 꼽히는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함께 대화한다는 내용입니다. 복음서에서 전해주는 대부분의 기적이나 이적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거룩한 변모 역시 사건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반응을 더 강조합니다.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함께 지내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반응에서 그 광경이 얼마나 황홀했을지 짐작하게 됩니다. 초막에서라도 함께 머물고 싶어 했던 베드로 사도의 모습에서 ‘영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복음서는 땅에서의 반응뿐 아니라 하늘에서의 반응 역시 전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의 세례에서 역시 비슷한 하늘의 소리를 들은 바 있습니다(마르 1,11). 공생활의 시작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해가는 막바지 여정에서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알려줍니다. 그분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입니다. 거룩한 변모 사건은 예수님께서 그저 한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성을 강조합니다.

‘사랑받는 아들’은 오늘 복음과 독서를 하나로 묶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창세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는 이미 복음을,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알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마치 예수님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느님 역시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제물로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로마서에서 이런 사실을 강조합니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느덧 우리는 사순시기를 시작했습니다. 사순시기의 시작에 주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이들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역설적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외아들이고, 그분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분은 수난의 길을 걸을 것이고 인간의 손에, 하느님의 창조물 손에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창조주가 창조물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사순시기는 이것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거룩한 모습을 통해 보여지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 안에서 역설적으로 고통스런 수난과 죽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순시기는 보속과 참회의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허규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