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26) 윌리엄 콩던과 ‘십자가 처형 2’

조수정(미술사학자)
입력일 2015-02-24 수정일 2015-02-24 발행일 2015-03-01 제 293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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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고통 앞에 봉헌한 ‘회심’의 붓질

가톨릭으로 개종 후 작가의 신앙적 관심 투영
소름 끼치도록 생생한 표현… 깊은 영적 여정 엿보여
이탈리아 아시시 프로 치비타테 크리스티아나(Pro Civitate Christiana) 현대미술관에 있는 윌리엄 콩던의 작품 ‘십자가 처형 2’, 1960년, 유화, 85×59 cm.

윌리엄 콩던.
이번 글에서는 20세기 후반 그리스도교 미술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화가들 중의 한 명이며, 매우 독특한 삶을 살다 간 윌리엄 콩던(William Grosvenor Congdon, 1912~1998)을 소개하려 한다. 콩던은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의 한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예일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도, 따로 그림수업을 받으러 다닐 정도로 회화에 열정이 있었던 그는, 대학 졸업 후에는 정식으로 펜실베이니아 미술학교에서 배우면서 화가로서의 길을 준비했다.

그는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각지로 여행을 하면서 접하게 된 유럽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적 안목과 시야를 넓혔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자원병으로 입대하여 시리아,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독일 등지로 파견되어 여러 도시들과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그림으로 남김으로써 특별한 예술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뉴욕에 자리 잡게 된 콩던은 현대 도시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붓 대신 스패튤러(spatula : 미술용 나이프)를 사용했다. 물감을 패널에 두껍게 바르는 임파스토 기법을 쓰고 그 위에 섬세한 선을 새겨 넣는 그의 작업방식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물감을 이리저리 붙이고 다시 긁어내는 점에서 조각가의 방식과도 비슷했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보는 이들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황폐한 도시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전후의 불안감과 그만의 독특한 서정성은 누구의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잭슨 폴록, 로스코, 마더웰, 그리고 바넷 뉴먼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화가로서 뉴욕 미술계에서 명성을 얻게 됐다. 1949년에 열린 첫 번째 개인전에서 ‘실제의 회화적 감동’을 주는 작가라는 칭송을 받았고, 1951년에는 라이프 잡지에 ‘주목할 만한 신진 미국화가’로 소개될 정도였다. 그의 작품은 잘 팔렸고, 유명 박물관은 미국의 대표적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떠오른 그를 주목했다.

그러나 세속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콩던의 삶과 예술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순간이 다가온다.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그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산 마르코 광장과 궁전들을 화폭에 담는 데 몰두하면서 새로운 내면의 빛을 감지하게 됐고, 전쟁의 비극이 불러온 공허감, 아메리칸 드림의 피상성, 그리고 물질주의 사조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드디어 1959년, 콩던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아시시에서 세례를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사도 성바오로의 회심과도 비슷했다. 콩던은 그동안 자신이 추구하던 모든 것을 버렸고, 뉴욕 화단의 명성도 돌아보지 않게 됐다. 수비아꼬(Subiaco)의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에 머물면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그리고 예술에 대해 오랫동안 묵상했다. 1960년부터 1965년까지 콩던은 종교적 주제의 작품들만을 그렸다.

특별히 십자가 처형을 그렸다. ‘십자가 처형 2’라는 작품은 세례를 받은 이듬해 제작한 것으로, 구세주의 고통 앞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의 치열함이 소름 끼치도록 리얼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종교적 주제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동안 예술가로서 쌓아왔던 세속적 명성이 끝장남을 의미했다. 전에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주었던 비평가들이 이제는 그를 변절자라고 비난했다. 예술적 재능을 교회의 발밑에 바친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콩던은 예술계의 은둔자가 됐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외로운 여행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어울려 새로운 경험과 모험을 즐기는 예술가로서의 모습이었다.

이후 그의 예술은 작가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었다. 색채로 가득 찬 넓은 공간, 새로운 빛과 견고한 형태는 콩던이 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클리포드 스틸의 요란한 색채, 잭슨 폴록의 떠들썩한 자기표현을 멀리 떠나보낸 화가의 세계였으며, 오랜 침묵과 고통의 세월을 견뎌낸 이들만이 바라볼 수 있는 평화의 세계였다. 깊은 영적 여정의 결과인 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이 종교미술과 양립할 수 없다는 당대의 그릇된 인식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가를 명백하게 보여줬다. 콩던에게 있어서 회화란 신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특별한 형태의 봉헌 행위였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길이었던 것이다.

조수정씨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수정(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