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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형수들의 어머니’ 조성애 수녀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5-02-24 수정일 2015-02-24 발행일 2015-03-01 제 293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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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새 삶의 기회 빼앗는 죄악”
“사형수가 사랑 체험하고 천사로 거듭나는 것은 기적이며 하느님 은총”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이 매섭기만 한 겨울, 경기도 파주 광탄의 한 묘역. 수녀 한 명이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서 있었다. 무덤 위로 누렇게 시들어버린 풀을 쓰다듬는 수녀의 손길은 마치 자식을 쓰다듬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죄의 크기만큼이나 참회도 깊어졌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는데….”

알 듯 말 듯한 말을 되뇌는 수녀의 눈가가 붉어진다. 세찬 바람 속에서 쓸쓸히 발길을 돌리는 이는 다름 아닌 ‘사형수들의 어머니’ 조성애 수녀(83·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조 수녀는 생각이 깊어지거나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자신도 모르게 사형수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를 찾는다. 서른 명이나 되는 사형수들이 묻힌 이곳은 일반인들에게는 존재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이 묘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도 바로 조 수녀다. 죽음 후에도 아무도 찾아가려 하지 않는 사형수들의 시신,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 마지막 길에라도 함께하려 나섰던 것이다.

“한 형제가 ‘감옥에서 처음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을 땐 같이 울고 말았어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큰 사랑으로 지어지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데 그 사랑을 사형수가 돼서야 알게 되다니…. 그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지난 1976년 교정사목에 뛰어든 조 수녀가 처음 사형수와 대면한 것은 그로부터도 10여 년 더 지난 1988년이었다. 그 순간은 아직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서웠어요. 처음엔 말도 잘 안 나오고 떨리기만 했어요. 자꾸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거죠.”

두려움을 떨쳐내고 한발 더 다가서자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사형수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몰랐고…. 그러는 사이 어쩌다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전해지자 처음엔 움찔움찔하던 그들도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 인해 변해갔습니다.”

조 수녀가 사형수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 모두가 눈감아버리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형수가 사랑을 체험하고 천사로 거듭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요. 저도, 사형수 형제도 사랑이 낳은 기적에 놀라게 되고 그것이 곧 하느님으로부터 온 은총임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먼저 사는 게 아닐까요.”

여든을 훌쩍 넘긴 노수녀가 사형제도에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깨닫고 그 사랑의 기적으로 자신과 주위를 변화시켜갈 줄 아는 능력을 지니게 될 때, 그야말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사형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행위로 생명을 빼앗는 것은 또 다른 죄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조 수녀에게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사형폐지를 외치는 행사라면 빠지지 않고 찾아가 힘을 보태는 것은 물론, 사형수로 인해 아픔을 겪은 피해자가족들을 찾아 도움을 전하며 사형수들을 대신해 용서를 비는 일도 마다치 않는다.

“그들이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하느님만이 거둘 수 있는 생명을 피조물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건 또 다른 아픔을 낳는 일임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