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교회의 가르침] (48) 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상)

송창현 신부
입력일 2015-01-27 수정일 2015-01-27 발행일 2015-02-01 제 2930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하느님 없이는 참된 희망 없다”
‘그리스도교적 희망’ 의미에 대한 신학적 성찰
근대 이후 제기된 논쟁들 비판적으로 다뤄
“희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 중 하나”
회칙의 발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첫 번째 회칙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 이어 두 번째 회칙인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를 2007년 11월 30일에 발표하였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Spe salvi facti sumus)라는 로마서 8장 24절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이 회칙은 희망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탁월한 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그리고 교황은 근대 이후 제기된 그리스도교 희망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에 대하여 반박하고 적절한 대답을 제시한다.

회칙의 전체 구성과 주제

총 50개 항목으로 된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는 짧은 서론(1항)과 8개 장의 본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인 ‘신앙은 희망이다’(2~3항)에서는 신앙과 희망의 관계를 다루고, 제2장인 ‘신약 성경과 초기 교회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한 희망의 개념’(4~9항)에서는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제3장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10~12항)에서는 회칙에서 다루는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역사 안에서 진행된 희망에 관한 다양한 논란과 오해를 다루기 시작한다.

제4장인 ‘그리스도교 희망은 개인주의적인가?’(13~15항)에서는 그리스도교 희망이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박한다. 그리고 제5장인 ‘현대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희망의 변화’(16~23항)에서는 근대 이후 제기된 그리스도교 희망에 대한 다양한 공격과 그 원인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마침내 제6장인 ‘그리스도교 희망의 참모습’(24~31항)에서는 근대 이후 제기된 논쟁의 역사라는 맥락 안에서 희망의 참된 의미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답을 제시한다.

만일 우리가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를 이론 부분과 실천 부분으로 크게 둘로 나눈다면, 희망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다루는 제1부는 제6장까지이다. 그리고 희망에 대한 실천적 권고를 소개하는 제2부는 제7장인 ‘희망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들’(32~48항)에 해당한다. 회칙은 실천적인 자리로 기도, 활동과 고통, 그리고 심판을 제시한다. 마지막 제8장은 ‘희망의 별이신 마리아’(49~50항)에 관한 부분이다.

이상의 전체 구성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의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교적 희망은 무엇인가?”이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신약 성경과 초기 교회 전승에서 출발하여 근대 이후 다양한 논쟁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시한다.

암벽 등반자가 바위에 몸을 고정하기 위해 금속고리를 연결하는 사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두 번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교황은 신앙이 본질적으로 희망의 특성을 가진다며, “이미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올 것의 현존도 확신을 준다”고 강조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서론

서론에서는 전체 회칙에서 다룰 문제가 제시된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라는 성경 구절에서처럼, 그 희망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구원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그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구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그 확신은 어떤 것인가?

신앙은 희망이다

제1장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가지는 희망의 특성을 다양한 성경 구절에 근거하여 제시한다.

특히 히브 10,22.23 1베드 3,15 에페 2,12 1테살 4,13 등의 구절이 근거로 제시된다. 신앙과 희망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리고 신앙은 희망의 토대이다. 히브리서 10장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22절)에 곧이어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23절)라고 권고한다.

신앙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은 미래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삶이 공허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현재를 살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는 단지 모르던 것을 알려 주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그래서 희망의 메시지는 ‘정보 전달적’(informative)인 것만이 아니라 ‘실천적’(performative)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희망의 내용은 무엇인가? 회칙은 에페 2,12을 대답으로 제시한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하느님 없이는 인간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내용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참된 하느님을 알게 된다는 것은 희망을 얻는다는 뜻입니다.”(3항) 회칙은 이 희망의 증인으로 아프리카 출신 요세피나 바키타(Josephine Bakhita) 성녀의 삶을 소개한다.

신약 성경과 초기 교회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한 희망의 개념

제2장은 초기 교회에서 신앙에 토대를 둔 희망이 단지 정보 전달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신약성경의 예들을 통해 소개한다.

특히 7~10항에서는 희망이 신앙에 기초한다는 것과 희망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제시하기 위하여 히브리서를 상세하게 다룬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이 구절의 해석과 관련하여 교황은 그리스어 ‘휘포스타시스’를 객관적인 의미인 “우리 안에 있는 실재”가 아닌 주관적 의미인 내적 태도의 표현으로 이해한 마르틴 루터를 비판한다.

“믿음은 단순히 아직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개인적인 지향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줍니다. 신앙은 지금 당장에도 우리가 바라는 실제적인 어떤 것을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재의 실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의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미래를 현재로 이끕니다. 미래가 더 이상 단순한 ‘아직 아니’가 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러한 미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재를 바꿉니다. 미래의 실재가 현재와 접촉하여 미래의 것들이 현재 있는 것들에 쏟아져 들어오고 현재 있는 것들이 미래의 것들에 쏟아져 들어갑니다.”(7항)

그리스도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희망의 특성을 가지는데, 그 신앙은 단지 바라는 것들을 향한 내적 태도가 아니라, 바라는 것들의 실체(substantia), 즉 ‘알맹이’를 지니고 있다. “신앙을 통하여 우리가 바라는 온전하고 참된 생명이 최초의 상태로, 말하자면 ‘싹으로’, 따라서 ‘실체’(substantia)에 따라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올 것의 현존도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7항)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은 전혀 근거 없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과거에 이미 보여 주셨고, 현재에도 그분의 현존 안에서 보여 주시는 것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희망이다. 따라서 신약 성경의 희망은 “이미 주어진 현재의 관점에서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기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과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9항) 여기에서 현재와 미래의 관계가 잘 드러난다.

이러한 신약 성경과 초기 교회의 신앙과 희망에 대한 고찰은 이제 다음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삶을 변화시키고 삶을 지탱해 주는 희망입니까?”(10항)

송창현(미카엘) 신부는 1991년 대구대교구 사제로 서품됐으며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가톨릭사상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송창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