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입력일 2015-01-27 수정일 2015-01-27 발행일 2015-02-01 제 2930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신의 뜻 찾는 한 인간의 여정

부르심 앞에 갈등 방황하면서
끝까지 응답하려는 모습 보여
‘어린 소년’ 하느님 묘사 이색적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포스터.
지난해 성경 내용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몇 편 개봉되어 기대를 모은 바 있다. 2004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열기가 잠잠해진지 십여 년 만에 반갑게 등장한 성경영화가 ‘노아’였다. 많은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노아의 홍수 사건을 소재로만 가져왔을 뿐 성경 내용과는 거리가 멀어서 큰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 여파가 너무 컸는지 그 후에 개봉한 예수영화 ‘선 오브 갓’이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도 교회 내에서조차 별로 화젯거리가 되지 못했다.

사실 대중영화를 표방한 성극은 늘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편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기 체험이나 교리의 틀 안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경이나 특정한 종교적 전통을 모르기 때문에 맥락을 이해 못한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관점을 바꾸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매력 아니겠는가. 이런 면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탈출기의 모세를 새롭게 만나게 해준다.

1956년 찰튼 헤스톤이 주연한 ‘십계’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십계’의 모세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권능을 대리하는 강력한 지도자였다면, ‘엑소더스’의 모세는 파라오의 신들을 무시할 정도로 자기 실력과 이성을 믿는 합리주의자다. 파라오의 친아들처럼 자랐으나 출생의 비밀 때문에 광야로 쫓겨나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하느님을 받아들인다. 절대적인 신체험을 한 모세는 동족을 구하러 이집트에 돌아가지만, 자기가 아는 방법은 군사를 조직해서 무력으로 싸우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점점 더 가혹해지는 형벌과 채찍을 지켜본 하느님은 “내가 하는 것을 보아라”라며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파라오의 항복을 받아낸다.

‘십계’에서는 모세를 통해 큰 기적을 일으키는 하느님이 주인공이라면, ‘엑소더스’는 신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서 갈등하고 방황하면서도 끝까지 응답한 인간이 주인공이다. 모세가 자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관람객에게는 다소 지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힘과 이성만 믿었던 한 무신론자가 신앙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거쳐야 했던 치열한 삶의 여정으로 본다면 그 지루함은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가 될 것이다.

‘엑소더스’의 특이한 점은 하느님이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다. 불붙은 떨기나무와 함께 나타난 소년은 모세와 끝까지 동행하면서 길을 가르쳐주고, 때로는 논쟁을 벌이며 모세를 이끈다. 자신의 판단보다 먼저 하느님께 뜻을 물어보고 대화하는 모세의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앙의 관점으로 본다면 ‘엑소더스’는 탈출기의 좋은 시청각교재다.

김경희 수녀는 충북대 철학과와 서강대 언론대학원 미디어교육과를 졸업, 서울 수도자 신학원과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영화 등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 방안을 강의했다.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