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운명 / 최재수

최재수(마리오·매일신문 기자)
입력일 2015-01-20 수정일 2015-01-20 발행일 2015-01-25 제 292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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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다닌 고등학교는 천주교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였다. 당시 교과과정에 종교시간이 있었지만 종교의 본질과 역사,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공부했던 것 같다. 선생님도 신부가 아닌 일반 교사가 가르쳤다. 그땐 천주교에 대해 별 관심도 없어 관심 있게 배우지 않았다.

2학년 때 일이다. 개교기념일 날, 간단한 기념행사를 한 후 학교 측에서 주는 빵을 먹고는 대부분 학생들이 집으로 갔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미사’를 봉헌한다며 성당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호기심이 생겼다. 친구들 틈에 끼어 성당에 들어갔다. 2년 동안 학교에 다녔지만 항상 문이 닫혀 있어 성당 안에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래된 성당 내부는 바깥에서 본 것보다 볼 것이 많았다. 규모도 컸다. 정면 벽 중앙에 걸려 있는 십자고상(十字苦像)이 눈에 들어왔다. 여느 교회에서 봐왔던 십자가와는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가지런히 놓인 제대와 오묘한 빛을 발하는 스테인드글라스, 향 냄새, 영성체 등. 신비스럽고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필자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에 흠뻑 빨려 들어갔다.

이후, 천주교 신자인 친구를 따라 학교 뒤에 있는 교구청을 넘나들었다. 성모당과 성직자 묘역 등이 있는 교구청은 공원이었다. 묘역 잔디밭 위에 자리를 깔고 장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자는 그때부터 천주교 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10여 년 뒤, 세례를 받았다. 이처럼 하느님의 은총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돼 있는 사람에게 오는 것 같다. 아멘.

최재수(마리오·매일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