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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주권 포기하고 만기전역한 박기상 병장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4-12-16 수정일 2014-12-16 발행일 2014-12-25 제 2924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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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신앙 심어준 ‘군대’, 잘 온 것 같아요”
합법적으로 군대 안 가도 되지만 성숙한 인격 함양 위해 입대 결정
군종병 활동하며 신심도 깊어져
지난 12월 10일 만기전역한 박기상 병장.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한국 청년’ 박기상(스테파노·24) 병장은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군에 입대, 12월 10일 만기전역 했다.

부모님이 홍콩에 이주해 사업을 하던 중 1991년 박 병장을 낳았다. 홍콩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박 병장은 초등학교 입학 후 5학년까지 한국에서 지낸 후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 국제학교를 다녔고, 지난 2009년 9월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 입학해 정치학과 도시개발학을 복수전공했다. 부모님이 한국인이긴 하지만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했다.

홍콩에서 이미 2006년 영주권을 취득했기에 합법적으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박 병장이 군대에 간 이유는 아버지 박영진(유스티노·59)씨의 권유와 군대에 대해 갖고 있던 좋은 이미지 때문이었다. 멋진 제복을 입고 절도 있는 조직생활을 하는 군대가 ‘남자의 세계’로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를 받고 처음부터 입대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영주권을 가진 한국 청년 중에 군대에 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내가 꼭 군대에 가야하나’ 의문이 들었다. 박 병장은 결국 아버지의 권유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려면 군대 경험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캐나다를 떠나 홍콩을 거쳐 한국에 입국, 2013년 3월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신병교육을 받고 경기도 화성 육군 제51보병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일병 때까지는 외국에서는 몰랐던 ‘서열문화’가 생소해 군생활이 어려웠다. 박 병장은 홍콩에서 배를 타고 한인본당 미사에 절대 빠지지 않던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은 데다 군생활이 힘들수록 신앙에 더욱 의지하며 51사단 전승본당(주임 이종덕 신부) 미사를 거르지 않았다.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박 병장을 눈여겨 본 손호준(시메온) 군종병(2014년 7월 전역)이 박 병장에게 “군종병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나중에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손 군종병도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입대한 비슷한 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올 3월 군종병이 된 박 병장은 소속 부대인 51사단 168연대 4대대 최초의 천주교 군종병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박 병장은 “군종병이 된 후 달라진 점이라면 주일 오후 3시 미사 준비를 위해 오전 11시에 성당에 도착해서 눈 쓸고, 낙엽 치우고 미사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비록 작은 일이지만 군종신부님을 돕는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입대 전 특기를 살려 본당 행사나 세례식에서 사진촬영을 맡아 본당의 역사를 사진으로 남긴 일도 기억에 남았다.

박 병장은 “21개월 동안 군복무를 하면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보다 견고하게 신앙을 다지게 돼 군대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감정기복이 심하던 제가 군생활을 통해 진중하고 사려 깊은 모습으로 변했다”고 자평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