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대부모가 되어 간다는 것 / 김진영 기자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4-12-16 수정일 2014-12-16 발행일 2014-12-25 제 2924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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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대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 챙겨주시옵소서.”

대자 수가 서른 명이 넘어 몇 명인지 모르겠다며 한탄하는 교리교사에게 선배 교사가 자기만의 기도를 알려줬다. 장난 반 진담 반이 섞인 그 기도문은 비단 그 교리교사에게만 필요한 기도문이 아닐 것이다. 교리교사들은 매번 세례와 견진 때마다 늘어나는 대자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지만, 대부모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세례·견진 대상자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대부모를 서게 된다. 종종 세례 대상자들에게는 견진 때는 꼭 제대로 된 대부모를 찾길 바란다는 조건 아닌 조건을 걸기도 한다.

성인 예비신자 교리교사들에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을 때 나온 대답 중 하나가 대부모를 구하는 것이었다. 교수나 의사들 대부는 서로 서겠다고 하지만 장애가 있거나 가정환경이 어려운 사람의 대부모를 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라 했다. 대부모를 구하는 것조차 빈익빈 부익부라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모는 신앙생활의 후견인이다. 그런데 대부모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에 조차 세상의 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재보는 사람이 어떻게 신앙생활의 후견인이 될 수 있을까. 대자가 서른 명이 넘는다는 교사에게 그렇게 많은 대자가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그 교사는 대자들 중에 이미 주님 곁으로 간 대자도 있고, 냉담을 한 채 도저히 연락을 할 수 없는 대자도 있고, 장애가 있는 대자도 있다며, 자신이 왜 대부를 섰을까 하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할 시간에 대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대자들을 위해 더 필요한 일이라 대답했다.

부모는 되는 게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모 역시 그렇다. 이번 성탄에는 대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조금은 더 성장한 대부가 돼야겠다.

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