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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작가 공지영 對 박현동 아빠스… ‘작가와 수도자, 수도원 기행을 말하다’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4-11-25 수정일 2014-11-25 발행일 2014-11-30 제 292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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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종소리에 이끌린 기도…  어느 틈에 제가 변해 있었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출간 기해 만남 
수도원 기행 첫 편 이후 13년 만의 결실
왜관수도원 등 세계 11곳 수도원 체험 나눠
기행문 형식 빌린 영적 체험·신앙 고백 ‘진솔’
박현동 아빠스가 집필 권유·수도원 섭외 등 도움

박현동 아빠스 
“꽉 짜인 규율에 맞춰 살아가는 수도원 생활은
 변치 않는 하느님께 삶 자체로 찬미 드리는 것”

공지영 작가
“수도원 향하는 발길 자체에 은총 깃드는 경험…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여정 쓰고 싶었어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발간을 기해 만나 대화를 나눈 공지영 작가와 박현동 아빠스. 사진 이지연 기자
소설가 공지영(마리아)씨가 새로운 수도원 기행을 펴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첫 편을 낸 지 13년 만에 낸 결실이다.

분도출판사를 통해 펴낸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312쪽/1만 6800원)에는 지난 2년간 한국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시작으로, 성당과 수도원 11곳을 순례한 여정을 싣고 있다.

미국 뉴튼의 세인트 폴 수도원을 찾아 6·25 한국전쟁 당시 1만 4000여 명의 피난민들을 구해낸 화물선 선장이 수도자가 되어 살아온 흔적을 되짚고,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에서 안셀름 그륀 신부를 직접 인터뷰하는 등의 여정에서는 작가만이 가지는 예리한 시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하지만 수도원에서 찾아낸 이야기나 그곳에서 느낀 점 등을 엮은 소설가의 순례기 정도를 기대했다면, 예상 밖의 내용에 탄성을 지를만한 독자들도 많을 듯하다. 공 작가는 기행문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한 줄 한 줄에는 본인의 깊은 영적 체험과 신앙 고백을 담아냈다.

공 작가는 이 책에서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고, 제 삶도 완전히 변했다”고 고백한다. 수도원 순례 이후 그의 삶은 “어떤 일이든 ‘이 일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영원을 위한 결단을 먼저 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집필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의 권유로 구체화됐다. 공 작가는 박 아빠스를 이 책의 ‘공저자’라고 부르며“박 아빠스께선 제가 세계 곳곳의 수도원을 찾아갈 수 있도록 섭외와 예약을 해주셨을 뿐 아니라 수도원에 관한 각종 자료 제공과 설명 등을 도맡다시피 하셨다”고 소개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출간을 앞두고, 작가와 수도자의 솔직담백한 대화를 통해 수도원 기행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공 작가와 박 아빠스의 만남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평화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성 베네딕도회 서울 수도원 피정의 집과 분도출판사를 오가며 이뤄졌다. 권위나 체면치레 등은 전혀 볼 수 없는 이들의 대화 전체를 지면에 싣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하며, 이들의 수도원 기행을 시작한다.

- 박현동 아빠스(이하 박 아빠스): 이 가을, 하루하루 더욱 깊어진 신앙 체험, 여러 사건을 통해 더 명료해진 ‘하느님 공부’를 진솔한 신앙의 언어로 전해주신 책을 내셨군요.

- 공지영 작가(이하 공 작가): 10여 년 전, 저는 ‘나의 하느님 공부’라는 제목으로 책을 한 권 쓰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사랑 체험이 더욱 절절해졌습니다. 영성적 이야기를 나누는 무대가 바로 수도원이었죠.

- 박 아빠스: 유명한 작가가 글을 쓴다고 하니, 대단히 지적이고 고차원적인 말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이 책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신앙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 하느님을 찾아가는 이라면 한번쯤 해봄직한 고민을 솔직히 밝혀주셔서 독자들이 더욱 공감을 하지 않을까 합니다.

- 공 작가: 평소에 저는 하느님께 ‘대체 나한테 왜 이러세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왔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일부 받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무엇보다 ‘고통은 격렬한 은총’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겪은 고통의 경험, 사랑과 감사의 기록들이 다른 이들에게 나눔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하느님께 드리는 또 다른 봉헌이 되지 않을까 해요.

- 박 아빠스: 수도생활을 겉으로만 보면 참 딱딱하고 재미없게 느껴지죠. 저도 각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엄격한 분위기 또는 쾌활하고 친근한 분위기 등을 각각 느껴본 경험이 있거든요.

- 공 작가: 저같이 자유분방한 사람과 베네딕도회는 너무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요. 게다가 제가 수도원을 방문할 때마다 수사님들이 대화 도중에도 ‘땡’하고 종소리가 울리면 어김없이 일어나시는 등의 모습을 보며 규율에 너무 얽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발심이 일었거든요.

- 박 아빠스: 저희 삶의 방식은 변함이 없지요. 일하고 기도하고. 이 삶 자체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것인데요. 수도원을 찾는 분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영원하고 변치 않는 하느님을 느끼실 수 있다면 저희가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의미를 가지겠지요.

- 공 작가: 저는 이번에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을 방문하면서 규율의 가치를 확실히 알았답니다. 꽉 짜인 기도시간, 단조로움 안에서 육체가 영혼을 이끌고 영혼이 다시 육체를 이끄는 변증법적 삶의 의미라고 할까요. 무엇보다 육체적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안 것이 저에겐 큰 수확이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인간의 한계, 내면 등을 그야말로 꿰뚫어보신 분이신 것 같아요. 저도 베네딕토 성인의 열혈 팬이 됐답니다.

- 박 아빠스: 수도원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저희가 생활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본인들의 고통과 처지 등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듯 합니다. 가난하고, 규칙에 얽매여 사는 모습에서 자신들의 처지가 더 낫다고 생각하시기도 하더군요.(웃음)

- 공 작가: 그냥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기도하지 않을래?’하는 듯한 종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종소리에 이끌려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내 상처에 소독약이 발라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수도원을 들어가도, 밖으로 나와 보면 어느 틈엔가 제가 변해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수도원을 향하는 발길 자체에 은총이 내재된 것을 체험했다고 할까요.

- 박 아빠스: 작가님 집에 불이 났던 체험이라든지, 갑작스레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있는 지인의 내면 이야기 등 인상 깊었던 일화들이 참 많습니다. 이 책을 통해 특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좌절과 우울, 무기력 등에 빠져있는 이들이 삶의 올바른 의미를 찾는 힌트를 던져주셨어요.

- 공 작가: 교도소 수용자 등을 만나보면 대부분이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기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저도 여태껏 제가 ‘왜 사는가’라는 주제를 찾아 도서관의 장서들 사이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이젠 확실히 압니다. 제가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제가 할 일은 제 영원의 구원을 위해 그 하루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요즘 제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매일 새벽미사를 한다는 것이에요. 요즘 제가 더 젊어지고 예뻐졌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동안의 비결은 바로 기도’라는 홍보도 열심히 하죠.(웃음)

- 박 아빠스: 사실 지인의 기도로 한 순간에 담배를 끊을 수 있었다며 기도의 힘을 피력하신 다든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체험 등을 풀어놓으실 때는 수도자인 저조차도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반면 뜨거운 사랑체험이 부럽기도 하고, 유명 작가로서 일종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우는 글을 쓰신 용기와 저력이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 공 작가: 수도원 기행 첫 편에서는 하느님께 초대되어 그 문으로 들어간 내용을 썼다면, 이번에는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여정을 이야기했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대체 하느님께서 왜 저를 이렇게 사랑하시는지도 묻고 또 묻는 사람이었거든요. 아무 조건 없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한동안은 믿을 수 없었고요. 세 번이나 이혼 경험이 있는 저에게, 교회법적 시각으로 보자면 모자란 것투성이인 저에게 이렇게 큰 사랑의 기회가 주어지다니. 제가 이렇게 사랑받았다는 체험을 쓰는 것은 하느님이 멋진 분이라는 것을 알리는 또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요.

- 박 아빠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아, 우리 삶이 이랬구나’라는 성찰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공 작가: 제 신앙체험이 수도자들에게도 도움이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웃음) 이 책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관통하는 한줄기 마음은 거저 받은 이 사랑을 또한 거저 받은 이 축복의 만 분의 일이라도 이웃들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큰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요.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