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게 공부하면 안 되나? / 권길중

권길중(바오로·한국 평협 회장)
입력일 2014-11-25 수정일 2014-11-25 발행일 2014-11-30 제 292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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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10시 미사 때이다. 평소 같으면 미사가 있을 소성당이 텅 비었다. 예고도 없이 미사를 생략하게 되었는가 싶으면서도 ‘혹시’ 하는 생각으로 대성전으로 가보았다. 성전 안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했다. 그제야 그날이 수능시험 날임을 알아차렸다. 필자는 성체조배를 하면서 공부가 힘든 아이들을 예수님께 맡겨드리는 것을 미사지향으로 정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방법을 찾아 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새인 기러기들에게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기러기들이 10만 리나 되는 먼 거리를 V자 대형으로 이동한다. 그 이유는 혼자 날 때보다 75%의 힘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리학적으로는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할 때마다 뒤따라 날아가는 동료에게 부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장서서 날아가는 기러기가 힘들 것을 생각해서 뒤의 기러기들은 ‘꽉 꽉’ 하고 소리를 내서 응원하면서 따른다. 견디기 힘든 긴 여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공동체적 지혜이다. 함께 날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에서 서로에게 심리적으로 위안을 받으면서, 머나먼 여행길에서 쉽게 지치지 않는 힘을 얻는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긴 여정 중에 어떤 기러기가 총상을 입거나 지쳐 땅에 내려와야 한다면 꼭 두, 세 마리가 같이 내려와서 그 기러기가 치료되고 원기가 회복되어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돌본다는 것이다. 기러기들의 공동체 정신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여 서로가 재능을 나누고 협력할 수 있다면 학습 성취에서 오는 행복감과 우정 덕분에 학교생활이 즐거워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필자는 학교에서 ‘인보학습’과 ‘협력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서로 돕고 학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시행해 본 경험이 있다.

인보학습은 곁에 있는 친구를 도우면서 함께 공부한다는 말이다. 반에서 수학이나 영어, 국어 등 과목별로 그 과목에서 뛰어난 친구가 해당 과목을 포기한 친구들을 도와주는 방법이다. 거의 개별지도에 해당한다. 그래서 배우는 친구들이 어느 학년에서 무슨 이유로든 결손을 일으킨 그 수준에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학습흥미가 매우 높아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도하는 학생은 친구를 지도하면서 그 문제의 원리를 깨닫게 되고 완전학습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낙오한 기러기를 위해서 동료 기러기가 함께 내려가서 힘을 비축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다. 물론 이렇게 봉사하는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 지도요령을 별도로 교육할 것이 전제되었다.

협력학습은 먼저 학습 성적이 다른 학생들로 협력분단을 구성한다. 그래서 교과교사가 제시한 학습과제를 함께 해결해 가는 것이다. 이 경우 먼저 성적이 우수한 친구가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서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학습방법을 재검토할 수 있어서 아주 훌륭한 방법임이 입증되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부진한 친구들이 문제 해결에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음으로 학습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장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곧 협력의 힘을 알게 되고 협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했을 때 모든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성취감을 갖게 되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스스로 자신이 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 몇 분이 ‘이런 학습방법은 일찍부터 지도자를 고착시킬 수 있을 것’임을 들어 문제를 제기하며 계속 진행할 것인가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때맞춰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모든 선생님들이 본 후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성적이 하위권에 속한 한 학생이 자기 그룹의 학생들에게 체육과의 중간고사 과제로 제시한 농구의 프리드로우 슛 방법을 열심히 지도하고 있는 모습을 모두가 보게 된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입학전형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친구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가득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막아야 된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을 어떤 형태로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면서 자랄 수 있을 때 그들의 학생시절도, 자라나 성인이 된 뒤에도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가톨릭부모부터 그렇게 시작하자.

권길중(바오로·한국 평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