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101차례 눈물의 기적 일어났던 일본 ‘아키타 성모성지’를 가다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4-11-18 수정일 2014-11-18 발행일 2014-11-23 제 292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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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던 눈물 멈췄지만 우리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 마음은 지금도…
성체봉사회 수녀원 성모상 성흔과 눈물 기적 일어나
101차례 발현, 1과 1사이 0은 영원하신 하느님 의미
아키타 성모 발현 때 눈물을 흘린 성모상. 1973년부터 1981년까지 101번에 걸쳐 눈물을 흘렸다. 아키타에 발현한 성모는 사사가와 수녀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보속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버스가 좁다랗고 가파른 시골길을 둘레둘레 돌아간다. 투명한 가을하늘 아래 빼곡하게 땅을 채운 산은 이미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 그 이름이 가을 밭, 곧 아키타(秋田)라 불린다 했다. 일본 아키타의 가을, 이 고즈넉한 경치 속에 눈물을 흘리신 성모의 기적을 품은 고요한 땅이 있다. 아키타시 소에가와 유자와다이 언덕에 있는 성체봉사회 수녀원이 그곳이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띄엄띄엄 놓인 농가를 지나자 널찍한 평원이 나타났다. 이윽고 일본 전통양식의 목조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일본의 사찰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의 지붕 끄트머리에는 십자가가 조각돼있다. 이곳은 바로 성체봉사회의 성당이다.

우리나라에는 아키타 성모성지로 더욱 잘 알려진 성체봉사회 수녀원은 1946년 신자들의 자발적인 기도모임이 발전돼 1970년 니가타교구에 설립된 여자수도회다. 다양한 현장에 파견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여러 사도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본원인 이곳 아키타의 수녀원은 기도로서 수도생활을 이어가는 곳이다.

언뜻 절처럼 보이는 수녀원이지만 곳곳에서 교회의 향기가 풍겨온다. 성당 기둥에 새겨진 포도덩굴에서부터 밀과 포도를 형상화한 제대, 그리고 성전 왼편 경당으로 가면 목각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바로 아키타에 발현한 성모의 기적이 나타난 성모상이다.

성모 발현… 치유 기적 일어나

목재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나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일본풍 성모상. 등 뒤에 십자가가 함께 조각돼있다는 것이 독특하다면 독특한 이 성모상은 어떤 화려한 꾸밈도 표시도 없다. 그저 평범한 목각 성모상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바로 이 성모상에서 성흔(聖痕)과 눈물이 흐르는 기적이 일어났다.

3번에 걸쳐 사사가와 가츠코(아녜스) 수녀에게 발현하고 1973년부터 1981년까지 자그마치 101번에 걸쳐 눈물을 흘린 성모다. 성모상에서 흐른 눈물은 아키타대학 법의학과의 조사에서 ‘인간의 체액’, 즉 눈물임이 밝혀졌다. 사사가와 수녀는 성모발현 때 수호천사가 “101번이라는 숫자는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온 것처럼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가 세상에 나옴을 상징한다”면서 “1과 1사이의 0은 영원에서 영원에 걸쳐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의미한다”고 말했다며 눈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기적이 일어난 이후 선교가 활발해졌고 아키타 성모의 전구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뇌암으로 식물인간이 된 신자가 아키타 성모의 전구를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되기도 했다. 이런 기적으로 1984년 니가타교구장 이토 주교는 아키타 성모의 공경을 승인하고 1988년 교황청 신앙교리성도 아키타 성모신심을 전하는 것을 허용했다. 성전의 오른편, 일반 신자들의 순례가 제한된 곳에는 101번에 걸쳐 흘린 성모상의 눈물을 닦은 솜을 모아뒀다.

지금은 비록 눈물을 흘리지는 않지만, 성모상은 이곳에서 있었던 기적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시는 성모의 마음을 묵상하게 해준다. 신자들은 이 성모상 앞에서 “모든 사람들의 보속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한 아키타의 성모의 말을 기억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각지에서 보내온 나무로 정원 꾸며

성전을 나서면 수도원의 정원들이 보인다. 두 곳의 정원은 자연의 모습에서 하느님을 묵상할 수 있게 해준다.

‘하늘의 문’이란 이름의 나무문을 지나면 ‘마리아 정원’이 나온다. ‘마리아 정원’은 성모 발현 이후 성모께 봉헌하기 위해 1976년 10월 조성된 정원으로 일본 각지에서 보내온 나무로 꾸며졌다. 회전식으로 되어 있는 이 정원은 성모상 앞에 일본 열도를 나타내는 연못을 둬 일본의 성화를 기원하고, 나무의 위치와 수로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등 산책을 하며 묵상할 수 있게 했다. 곧게 뻗은 길과 트인 초원의 모습이 인상적인 또 하나의 정원인 ‘어린양의 뜰’에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이곳의 십자가의 길은 총 15처로 마지막 처는 부활하신 예수를 묵상하는 처다.

조선인 순교자 부부 현양비도

인천국제공항에서 아키타까지 주3회 직항 운항되고 있어 한국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성체봉사회 수녀원을 찾고 있다. 수녀원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어 피정 등으로 필요한 경우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아키타 지역은 일본의 박해시기에 많은 순교자가 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 순교한 조선인 순교자 식스토 가자에몬과 가타리나 부부를 기리기 위한 현양비가 최근 세워지기도 해 함께 순례하기도 용이하다.

일본 각지에서 봉헌된 나무로 조성된 마리아정원.
성체봉사회 수녀원의 성당. 일본 전통방식 목조건물에 십자가가 조각돼 있다.
눈물을 흘리던 당시 성모상의 모습을 찍은 사진.
성모상에서 흐른 눈물을 닦은 솜.
성체봉사회 수녀원 본원에서 기도하고 있는 수도자.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