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상문화 속 교회이야기] 치즈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4-11-18 수정일 2014-11-18 발행일 2014-11-23 제 2920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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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수도원이 지켜온 음식
제조기술 발전시키고 전수
한국은 지정환 신부가 보급
“당신께서 저를 우유처럼 부으시어 치즈처럼 굳히지 않으셨습니까?”(욥기 10,10)

때론 부드럽게, 때론 쌉싸름한 맛으로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는 치즈는 구약성경에도 그 기록이 나와 있을 만큼 인류와 오랜 세월 함께해 왔다. 이 맛있는 치즈의 역사에서도 교회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치즈의 역사는 기원전 60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치즈 제조 기술을 지키고 발전시킨 곳은 바로 중세의 수도원이다. 치즈는 철저하게 금육을 지키던 수사들을 위한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일상 모든 일을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 여기던 수사들은 치즈를 만드는 것에도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생산된 치즈는 수도원 밖에서도 최고의 치즈로 인정 받아왔다. 주변민족 침입과 전염병으로 유럽 인구 1/3가량 죽어가 치즈기술이 사라져가던 시기에 수도원들은 치즈기술을 농민들에게 전수해 치즈의 맥을 잇게 해줬다.

현대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치즈는 공장에서 대규모 생산되는 것이지만, 중세 수사들의 치즈를 향한 노력 흔적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에는 생아루그, 생알브레, 생마르슬랭 등 많은 종류의 치즈에 생(Saint), 즉 성인(聖人)의 이름이 붙어있다. 고품질 유제품으로 유명한 베네딕도회는 1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명성을 지닌 마르왈 치즈를 만들었다. 또 트라피스트회가 만든 치즈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치즈 보급도 한 사제의 헌신으로 시작됐다. 벨기에인 지정환 신부는 6·25 전쟁 후 폐허와 다름없던 가난한 한국을 찾아 농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1964년 전북 임실본당 주임을 맡은 지 신부는 유럽에서 배워온 치즈기술로 임실 농민들과 함께 치즈공장을 설립했고, 이를 계기로 국내에 치즈가 보급됐다. 지 신부의 마음이 담긴 임실치즈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치즈 브랜드가 됐다.

중세 수도원이, 그리고 지정환 신부가 그랬듯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치즈에는 사람들을 향한 교회의 사랑이 묻어있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