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통일을 기다리는 파수꾼 / 조성하 신부

조성하 신부(도미니코수도회 통일사목 담당)
입력일 2014-11-18 수정일 2014-11-18 발행일 2014-11-23 제 292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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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경색을 해소하려는 듯 올해 초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남북은 신년사에서 남북 소통, 남북관계 개선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대립과 갈등으로 아직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한반도 분단이 새해인 2015년이면 70년이 된다. 남북한 각각은 자기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적대성을 통해서 확인하려 했다. 분단 70년의 역사는 한국전쟁 외에도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을 거치며 우리 사회에 어두운 질곡을 만들어 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분법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생각은 한민족 서로에 대해 적대감정, 멸시, 냉소, 배척으로 깊은 골을 만들어만 가고 있다.

세월은 망각을 재촉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한민족이며 한 형제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이념과 체제의 대립과 갈등이 있지만 기득권을 가진 집단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선량한 백성들이요 형제들이다. ‘통일 대박’이라는 말을 우리사회가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개인주의와 경제논리로 이해하는 기류가 더욱 만연한 요즘 진정한 통일인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취지는 더욱 멀어 보인다. 통일과 관련된 사안을 바라볼 때, 정치적, 경제적 고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권 및 인도주의적 입장과 태도이다.

이제 우리는 정치적인 한반도의 통일만이 아니라 한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적, 경제적 담론을 넘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정의와 평화를 향한 담론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이한다. 그분의 왕권은 예언자들이 전해준 평화와 정의, 그리고 자비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에 있다. 그 나라는 이미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마태 25, 35-36)

아직도 북쪽 지역에는 굶주리고 있는 예수가 있고 목말라 하는 예수가 있으며 탈출 루트를 따라 떠돌아다니는 예수가 있다. 헐벗고 병든 예수가 있고 수용소에서 신음하는 예수가 있다. 그리고 여기 한국 사회에서도 아직 나그네로 살아가는 새터민 예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를 만나서 그 분의 정의와 자비가 넘치는 왕권을 회복시켜 드려야 한다.

주님의 권능이 이 분단의 땅에도, 갈라진 민족에게도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사랑의 실천으로 응답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가 정의와 자비로 다스리는 그리스도를 만민의 왕으로 모시는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어야 한다. 기쁨과 희망은 이미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여명의 그 빛은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의 마음을 설레게 해야 한다.

조성하 신부(도미니코수도회 통일사목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