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교회의 가르침] (36)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 (상)

박준양 신부
입력일 2014-10-29 수정일 2014-10-29 발행일 2014-11-02 제 291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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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복음화는 인간 존엄성 증진 노력에서부터
아시아 교회 복음화 사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한 첫 교황 문헌
지리·문화·언어·경제·종교적 다양성 등
뚜렷한 특성 고찰하며 교회 사명 제시
극심한 가난·소외 현실 상황 속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 강조
이주자·어린이·여성 문제 특별히 관심
뿌리깊은 종교·문화적 가치 존중하며
종교 간 대화 통한 복음화 모색 역설
지난 8월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현 교황(재위 2013~ )은 2015년에도 필리핀과 스리랑카 등 아시아 국가들을 계속 방문할 예정이다. 이는 현대 가톨릭 교회에 있어 아시아 교회의 중요성과 그 미래적 사명을 암시하는 좋은 표징이라 할 수 있겠다.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99년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는 이러한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말하는 첫 교황 문헌이다. 이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해 대륙별로 열린 특별 주교시노드 중, 1998년 4~5월 로마에서 개최된 아시아 교회 시노드의 결과를 수용하여 발표한 것이다.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는 1999년 11월 6일 인도 뉴델리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장엄하게 반포되었다.

아시아 대륙의 특성

「아시아 교회」는 먼저, 아시아가 여러 면에서 볼 때 다른 대륙들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설명한다. 우선 지리적으로 볼 때, 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대륙이고, 세계 인구의 3분의 2 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매우 광대한 땅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리적 측면 외에도, 아시아는 문화적으로 매우 특징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즉, “이 대륙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고대 문화와 종교 그리고 고대 전통들의 계승자들인 그 민족들의 다양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류 가족의 유산과 역사의 본질적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문화, 언어, 믿음과 전통들의 서로 혼합되고 어우러진 복합성”(6항)이야말로 아시아 대륙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실재인 것이다.

이러한 종교-문화적 특성 외에 경제-사회적 차원에서도 아시아 대륙은 다양한 복합성을 보인다. 한편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처럼 고도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들 혹은 그러한 발전을 향한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극심한 가난의 상태에 머무는 나라들도 많다. 「아시아 교회」는 “아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위대한 문명들의 대륙이지만 몇몇 국가는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결핍과 가난 그리고 착취로 고통 받고 있는 곳”(34항a)임을 지적한다.

나아가, 경제적 양극화는 아시아 대륙이 당면한 큰 사회 문제이다. 한 나라 안에서 볼 때나 대륙 전체적으로 볼 때나, 아시아에는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통한 인간 소외 현상이 발생한다. “가난과 대중 착취의 지속적인 존재는 가장 절박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아시아에는 수백만의 억압받는 개인들이 여러 세기 동안 경제 문화 정치적으로 소외된 채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어 왔습니다.”(7항f)

그리고 이러한 경제 발전 과정에서 파생되는 정신문화적 황폐화 역시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한다. “개발 과정에서 물질주의와 세속주의가 확산되고 있는데, 특히 도시 지역들에서 그러합니다. 전통적 사회적 종교적 가치들을 손상시키는 이러한 이념 체계들은 아시아의 문화를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손해를 끼치며 위협하고 있습니다.”(7항a)

인간화를 위한 아시아 교회의 사명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교회」를 통해, 아시아의 복음화에 있어 인간 존엄성의 수호와 증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즉, 아시아의 극심한 가난과 소외의 현실 상황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도우며, 하느님의 모습으로 고귀하게 창조된 인간 존엄성의 수호와 증진을 위해 기도와 관심 속에 노력해야 함은 아시아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교회가 추진하는 발전이란 경제와 기술의 문제 훨씬 그 이상의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적 품위와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인간 인격의 완전성”(33항a)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 작업에 있어, “아시아의 모든 하느님 백성이 인권의 옹호와 정의와 평화의 증진에 관한 불가피한 과제에 대하여 명확하게 의식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수많은 곳에서, 특히 수백만의 사람들이 차별과 착취 그리고 가난과 소외로 고통당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인권이 계속 유린되고 있음”(33항b)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말한다. “인간 존엄성의 향상을 추구함에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보잘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25,40 참조). 이 사랑은 어느 누구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교 전통 전체가 증언하고 있는 봉사의 우선순위를 단지 구체화할 뿐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 그리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가 내리는 결단은 당연히 저 무수하게 많은 굶주린 사람들,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34항a)

그런데 이처럼 참다운 인간화를 위한 애덕 실천의 사명에 임할 때, 아시아 교회가 특히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주자들의 문제, 그리고 어린이와 여성의 문제라고 요한 바오로 2세는 강조한다.

먼저, 아시아는 현재 피난민들, 망명 신청자들, 이주자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례 없는 홍수를 체험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이주 현상 속에서, 이주자들은 자주 외롭거나 문화적으로 고립되거나 언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기에, 그들이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과 문화적-종교적 전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지지와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아시아 교회는 한정된 자원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사람도 이방인이 아니며 그들이 모두 예수님 안에서 휴식을 찾게 됨을 알면서(마태 11,28-29 참조),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한 환대의 집이 되고자 관대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34항d)

한편,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대륙의 고통 받는 어린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다. “어느 누구도, 단지 개인들이 저지른 악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종종 부패한 사회 구조의 직접적 결과이기도 한 견디기 힘든 착취와 폭력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어린이들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 교부들은 어린이들의 노동, 어린이에 대한 성도착증, 그리고 마약 현상은 이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감염시키는 사회악임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병폐들이 빈곤과 결함 있는 국가 발전 계획과 같은 또 다른 요인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였습니다. 교회는 가장 착취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행동하고 어린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길을 모색하고자 이러한 악들을 극복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여야 합니다.”(34항f)

그리고 아시아의 여성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아시아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자주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심지어 법적 제도 안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맹은 여성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매춘이나 관광 그리고 유흥 산업을 위한 상품들로서 취급되고 있습니다. 온갖 형태의 불의와 차별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여성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동맹군을 발견하여야 합니다.”(34항g) 이러한 성적 차별 속에 아직도 여성 인신매매가 횡행하며, 낙태와 미혼모의 문제 역시 심각한 상황으로 돌봄의 손길을 기다린다.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여자 아이들은 낙태로 희생될 위험이 많으며, 심지어 태어나자마자 곧 죽게 될 위험에 놓이기도 한다”(7항f)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가치

아시아의 현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보다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인들의 내면에 종교적 가치의 문화화와 생활화가 깊이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시아 민족은 침묵과 명상에 대한 사랑, 소박함, 조화, 초연함, 비폭력, 근면의 정신, 훈련, 검소한 생활, 배움에 대한 목마름, 철학적 탐구와 그들의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가치들에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 존중,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 자연과 친밀함, 부모, 연장자와 조상들에 대한 효성, 그리고 몸에 밴 공동체 의식과 같은 가치들을 사랑합니다.”(6항c)

이처럼 아시아 대륙의 종교문화에 깊이 뿌리박힌 아시아인들의 삶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세계 종교들이 바로 이곳 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세계 종교들과의 진지한 대화가 아시아 교회에 요구된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아시아의 복음화 사업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복음화 사업에 대하여 말한다. “아시아는 세계의 주요 종교들, 곧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요람입니다. 아시아는 불교, 도교, 유교, 조로아스터교, 자이나교, 시크교, 그리고 신도(神道)와 같은 많은 다른 영적 전통들의 발상지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또한 다양한 수준으로 구조화된 의례와 형식화된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전통적이거나 종족적인 종교들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전통들에 대단히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 신봉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종교적 가치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6항b)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는 박준양 신부는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준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