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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메멘토 모리 / 이주연 편집팀장

이주연 편집팀장
입력일 2014-10-28 수정일 2014-10-28 발행일 2014-11-02 제 291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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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1970년대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공개됐다. 해당 게시물에 따를 때, 당시 한국인 남성 평균 수명은 58.6세, 여성은 65.5세였다. 그에 반해 2010년 통계에서는 남성이 77.6세, 여성이 84.4세로 나타났다. 40년 만에 한국인 평균 수명이 20년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실제적인 평균 수명 연장에 따라 기대 수명(각종 사망 통계 등을 고려해 앞으로 몇 년 더 살 수 있느냐를 추정한 수치)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한 시장조사전문기업의 조사 보고서는 평균적으로 한국 남성들은 83세까지, 여성들은 82세까지 살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만 80~84세까지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26.6%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100세 이상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8.8% 정도 였다. 점점 더 발전되는 의학 과학 기술을 감안할 때 ‘100세 수명을 넘어서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의 한 노화연구소는 실험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400~500세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발표, 눈길을 모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수명 연장에 대한 관심과 함께 ‘죽는 것’에 대한 시선도 새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웰다잉’(well-dying) 움직임이다. 2000년대 초 광풍처럼 느껴질 만큼 화두로 등장했던, ‘잘 먹고 잘 사는’ ‘웰빙’(well-being)에 대한 시선이 ‘잘 죽어가기’로 조용히 옮겨 가는 분위기다. 입에 올리기가 거북한, 일종의 금기 사항이었던 죽음이 점점 논의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질은 향상 됐지만 ‘길어진 수명’이 ‘양질의 삶의 연장’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지지 못하는 현실과 그 때문에 ‘연명’ 차원의 늘어난 삶을 고민하는 과정으로 맥이 잡혀지는 듯 하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했던 국가별 ‘죽음의 질’ 조사에서 OECD 40개 국가 중 32위를 했을 만큼 죽음의 질이 떨어지는 한국사회 환경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교회 전문가들은 “잘 먹고 잘 살다 죽자가 아니라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죽음을 삶으로 준비하는 웰다잉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 면에서 적절한 죽음 교육은 필수적이다. 그리스도교 문화가 근본인 서양 사회에서는 그 영향으로 죽음과 삶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는 반면 우리는 유교 문화가 변질되면서 죽음과 삶이 단절 되는 경향이 크다.

묘지, 납골당 등 죽은 이들의 공간을 혐오시설로 받아들이는 사회 정서도 그런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는 체계적 교육은 그리 찾기가 쉽지 않다.

윤리신학자 김정우 신부는 ‘죽음의 이해’에서 “인간에게 죽음은 반복되어질 수 없는 사건이고 삶이 의미가 있다면 죽음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기에 죽음을 단지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것은 삶을 거부하고 무의미하게 할 위험한 태도”라고 했다. 결국 적극적인 죽음에 대한 수용 속에서 의미를 추구할 때 인간은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밝힌다. 특히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이해와 극복은 ‘죽음을 초월하는 희망에 있다’고 했다.

기록에 따르면, 은수적(隱修的) 수도회 생활양식으로 단식, 침묵, 단순노동 등을 엄격히 준수했던 중세 시대 시토회에서 허용된 유일한 말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한다.

죽음을 떠올릴 때 인간의 유한성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삶과 현실에 게으를 수가 없다.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죽음은 얼마나 복된가. 그러나 그러한 죽음을 있게 한 이승의 삶은 또한 얼마나 고귀한가”라고 했던 독일 신학자 칼 라너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찾아온 위령성월이 또 다시 감사한 이유다.

이주연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