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우린 왜 ‘예’라고 응답하지 못할까 / 이경숙

이경숙(로사리아·수필가)
입력일 2014-10-28 수정일 2014-10-28 발행일 2014-11-02 제 291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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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본당이 둘로 나뉘고 우린 변변한 성전도 없이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아쉬웠다. 돈도 필요했고 봉사자도 턱없이 부족했다. 특별히 반주자가 많이 부족했는데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도 아니어서 책임을 맡고 있는 이는 날마다 사람을 꿰맞추느라 전전긍긍했다.

한 날, 딸아이와 함께 길을 가는데 그 자매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양 반색하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

“한별아, 너 반주 좀 해라.”

당시 딸아이는 음대 지망 수험생으로 두 마리 토끼(실기와 성적)를 쫓느라 정신없을 때였다. (초등부 때부터 미사반주를 해오다 고3이 되면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자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딸아이가 냉큼 응답한다.

“네.”

그 자매와 난 깜짝 놀랐다. “제가 많이 바빠요” 라든가 “생각 좀 해볼게요. 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즉시 응답하다니!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딸 참 예쁘다. 엄마가 봐도 이렇게 예쁜데 하느님이 보시기엔 얼마나 예쁠까.”

만일 딸아이가 음대에 떨어졌다면 실수를 했거나 실력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반주 봉사 때문에 낙방할 리는 없다. 어차피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데 자신이 가진 재능, 주님께 봉헌하며 미사를 드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우린 이리 재고 저리 재느라 교회 일을 맡을 수가 없다. 가끔은 겸손을 가장할 때도 있다.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데 들여다보면 나를 내놓고 싶지 않거나 희생하고 싶지 않은 것이 더 적절한 이유이다. 혹여, 자신이 가진 재물이나 시간, 건강, 재능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경숙(로사리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