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프란치스코 효과’를 현재화 시키려면 / 서상덕 기자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4-10-28 수정일 2014-10-28 발행일 2014-11-02 제 291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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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톡톡히 ‘교황앓이’를 한 기자에게는 그간 살아오면서 좀체 풀리지 않던 의문이 새롭게 도드라지는 체험이 더해졌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고 계시는데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하는 것이다. 기자가 이런 의문을 품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선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 대다수가 크고 작은 고통과 슬픔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과 슬픔 대부분이 경제문제와 얽혀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자신 또한 장애를 지니고 있음에도 장애를 지닌 부모를 모시고 눈물겹게 살아가는 여성,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맡겨져 생일잔치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아이,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도 못 나와 쉰을 넘기고도 막노동 일터를 전전하는 가장…. 조금만 도와주면 삶이 확연히 달라질 듯한 그들은 여전히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 그 해답을 찾는 자리가 있었다. 주교회의 정평위가 10월 2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새로운 독재’와 국가 : 신자유주의와 교회의 응답’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였다. 가톨릭 신자보다 가톨릭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의 입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자본을 통제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자본에 통제당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경제체제를 맘몬(Mammon)이라고 부르셨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성경을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예수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바리사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