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위령성월 맞이 르포] 수원교구 ‘안성추모공원’을 가다

박영호 기자,사진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4-10-28 수정일 2014-10-28 발행일 2014-11-02 제 291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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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더해갑니다”  “너무 걱정말고 잘 지내세요”
정겨운 인사·기도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가 만난다
리모델링하며 ‘공원’으로 조성
묘지·납골묘 등 끌어내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 ‘변모’
떠난 이와 남은 이 ‘연결’하는 ‘친교’의 장으로 자리매김
“부활 신앙 사는 그리스도인 죽음 두려워할 이유 없지요”
수원교구 안성추모공원 전경. 3년 전 다시 꾸며진 이곳은 ‘연결’을 주제로, 산 이와 죽은 이들이 만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회는 매년 11월을 위령성월로 지낸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그러해야 하지만, 특별히 이 시기 동안 산 이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이 기도는 실제로 죽은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 이미 들어간 성인들도 이 세상에서의 순례를 계속해야 하는 산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할 수 있다. 이처럼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통교가 가능하기에 위령 기도가 가능하고 위령성월도 의미를 더한다.

위령성월을 맞아, 삶과 죽음이 서로 만나는 장소로서 ‘추모공원’을 찾았다.

전날 비라도 왔던지 뽀얗게 씻겨진 테두리 속, 바랜 듯한 흑백 사진 속에 깨알 같은 글씨들이 촘촘하다. 흡사 오랜만에 전하는, 지인과 벗들과 가족에게 보내는 인사인 듯, 슬픔보다는 감사와 고백으로 빼곡하다. 삶과 죽음으로 경계지워졌음에도, 납골묘의 작은 사각 테두리 속 산 이와 죽은 이의 만남이 정겹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는 산 이와 죽은 이들이 시간을 초월해 서로 안부를 묻고, 감사를 나누고, 사랑을 고백하며, 기도를 약속하고 청한다.

사실 산 이든 죽은 이든 모두 하느님 나라의 신민(臣民)들이다. 하느님께야 육체로든 영혼으로든 삶과 죽음이 무슨 상관일까. 시간을 관장하시는 하느님, 당신의 백성들에게 세상의 한갓 가녀린 숨이 있고 없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런데 사실 죽음은 자주 삶이 파괴됨으로써 맞는 혐오와 공포로 여겨진다. 그래서 죽은 이들의 땅은 산 이들의 삶의 자리와 엄격하게 구분됐었다. 죽은 이의 땅은 피해야 하는 장소였고 그래서 항상 묘지와 화장장은 전국 어디서고 기피시설이었고 감춰져 잘 보이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죽음은 삶의 또 다른 표현이며 죽은 이, 특히 사랑했던 이의 죽음의 흔적과의 대면을 유쾌하고 즐거운 만남의 기회로 여기려는 모습도 나타났다. 수원교구 ‘안성추모공원’이 그러했다.

2011년 리모델링으로 다시 태어난 안성추모공원은 죽은 이들의 안식처이지만 산 이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시에 아예 이름을 ‘묘원’에서 ‘공원’으로 바꿨다. 삶과 죽음, 산 이와 죽은 이의 만남의 장소로 여겨지도록.

따가운 햇빛과 스산한 가을 바람이 함께 노닐던 10월 말에 찾은 공원은, 마지막 상춘객들이 모두 단풍놀이를 떠난 탓인지 추모객들이 많지는 않았다.

서울 개봉동에서 왔다는 김인자(마리아·58)씨는 함께 온 큰 딸과 며느리 팔장을 낀 채 “시야가 탁 트여서 너무 좋다"며 비탈길을 유쾌하게 걸어갔고 개구진 두 남자 아이가 그 뒤를 종종거리며 쫓아갔다.

공원측은 묘지와 납골묘들을, 죽은 이들만을 위한 ‘감춰진 공간’에서 끌어내 시야를 트고, ‘폐쇄된’ 영역을 자연 속으로 넓혔다. 방문객들의 시선과 15만 평 공원을 흐르는 공기 흐름까지도 개방하려 했다는 것이 원장 최석렬 신부의 설명이다.

“매장된지 20년이 넘어 개장하는 묘지들이 있는데, 개장한 뒤 생기는 묘지의 빈 공간 역시 묘지로 재활용하지 않고 녹지로, 즉 자연으로 돌려줌으로써 가족 공원의 면모를 더할 생각입니다.”

최 신부가 가장 강조하는 추모공원의 이른바 ‘컨셉’은 ‘연결’이다. ‘소통’, 교회적 용어로는 ‘친교’로 불리울 만한 이 연결은 안성추모공원의 가장 중요한 테제이다. 죽음을 삶으로 연결시키고, 산 이들을 죽은 이들과 연결시켜 만남으로 이어가는 것이 최 신부의 구상이다.

이 구상은 삶과 죽음이 동떨어지지 않았고, 죽음은 오히려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문턱이라는 교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통교한다면서 위령성월이면 산 이들의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를 권고하는 교회 가르침과 상통한다.

리모델링한지 3년, 거대한 시설이 들어서진 않았지만, 공원은 ‘전체적으로’ 바뀌었다. 자연을 향해 ‘개방’됐고, 삶과 죽음을 포함한 존재의 여러 차원이 ‘연결’되고 ‘소통’된다. 이 소통과 친교는 앞서 본 납골묘의 문구들에서도, 쾌활한 추모객들의 모습에서도 엿보인다.

특히 방문객들은 묘소를 방문하고, 온 길을 서둘러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잠시 더 머물며 쾌적한 야외 테라스에서 햇빛을 즐기고 천연조미료와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백반을 맛본 뒤, 직접 원두를 구입해 볶아서 내린 커피를 음미한다.

죽음이 혐오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죽은 이들과 즐거운 해후를 한 살아있는 이들이, 넉넉한 가을 공기를 마시며 자기 존재를 돌아보고 영원과 구원을 묵상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들의 기도와 묵상을 돕기 위해서 아예 본당이 들어섰고 사제가 상주해 주일에는 물론 평일 중에도 수요일 미사가 봉헌된다. 철따라 음악회를 포함한 문화행사들도 계획돼 있다.

그처럼 죽은 이들의 안식처이지만, 오히려 산 이들을 위한 배려와 안배가 돋보인다. 그 배려의 이유를 최석렬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추모객들에게 좀 더 쾌적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줌으로써 돌아가신 분들과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신앙을 살아갑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요. 위령성월이 삶과 죽음을 신앙 안에서 묵상하고, 가엾은 연옥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한 기도를 바치는 아름다운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산 이든 죽은 이든 우리는 모두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고, 그래서 위령성월을 맞아 우리가 더 열심하고 신실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는 초대이다. 교회는 특히 위령성월인 11월 1~8일 묘지를 방문하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에게는 연옥영혼에게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준다.
안성추모공원을 찾은 이들은 “시야가 탁 트여서 좋다”고 말한다. 공원 측은 묘지와 납골묘 등 폐쇄된 영역들을 자연으로 넓혀 가족 공원의 면모를 더했다.

납골묘에 적힌 사연들

“꿈에 자주 찾아오시고 우리가 잘 될 수 있도록 함께 지켜주세요. 사랑해요!”

“늘 함께한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영원히 잊지 않고 사랑합니다.”

“별 탈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그립습니다.”

박영호 기자,사진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