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 ‘이민 토크쇼’ 바로 보기

김은영(TV칼럼니스트)
입력일 2014-10-28 수정일 2014-10-28 발행일 2014-11-02 제 291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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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캐릭터에 머무르는 이주민 출연자들
이주 여성에게는 철저한 시혜적 시선
‘백인=똑똑’식 고정관념도 발견돼
이주민 남성 토크쇼 JTBC ‘비정상회담’ 한 장면.
이방인을 편견 없이 환대하기란 어렵다. 아브라함과 세 천사, 룻, 착한 사마리아 사람 등 성경에도 누누이 나오는 일화들은 이방인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을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방인은 궁금해서 매력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 색다른 외모와 말투, 경험과 관점을 가진 이주민들은 대중매체가 환영하는 집단이 됐다.

최근 ‘이민 토크쇼’가 많이 늘었다. TV 채널의 급증으로 비교적 제작이 손쉬운 토크쇼의 수요가 늘었고, 프로그램마다 개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별한 출연자 찾기에 나선 덕분이다. 이민 토크쇼의 상품성은 <미녀들의 수다>(KBS2, 2006~2010)에서 일찍이 검증됐다. <러브 인 아시아>(KBS1)는 결혼 이민자들의 친정 국가를 소개한다. 이방인 여성에 대한 호기심은 ‘탈북 미녀’를 내세운 <이제 만나러 갑니다>(채널A)로 이어진다. 이주민 남성 토크쇼 <비정상회담>(JTBC)은 동시간대 공중파 토크쇼의 시청률을 넘을 만큼 흥행 중이다.

이민 토크쇼의 존재는 어느 모로 긍정적이다. 출연자들의 증언과 시연, 자료화면, 해외 촬영분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한국 문화의 장단점을 새롭게 성찰한다. 이러한 배움은 여러 민족과 문화의 공존을 인정하는 ‘세계 시민’의 자부심을 선사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설정한 출연자 집단의 범주, 이야기를 끌어내는 내용과 방식을 생각하면 마냥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의 TV 토크쇼가 전달하는 이주민에 대한 관점은 성별, 학력, 출신지에 따라 차별적이다. 재미와 정보 양편에서 두루 호평받는 <비정상>의 출연자들은 고학력 유학생,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한국인보다 더 고급스런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인 진행자들이 퇴장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논리정연하게 토론하는 이주민 남성들에게 한국인들은 감탄한다. 그러나 이곳에도 미세한 함정은 있다. 한국어 구사력과 삶의 경험치 때문일까, 유색인 출연자들은 흥을 돋우거나 희화화되는 예능 캐릭터에 머물기 일쑤다.

이주 여성들에 대한 방송의 태도는 철저히 시혜적이다. <아시아>의 외국인 아내들은 한국인 남편과 방송사의 호의로 친정 식구들과 눈물의 해후를 하는 수혜자로 기억된다. <이만갑>의 젊은 새터민 여성에게 허락된 발언은 북한의 참혹한 기억에 진저리치며 남한의 풍요와 체제를 찬양하는 것뿐,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이는 <미녀들의 수다>보다 퇴보한 설정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한국 문화를 성찰하고 평가할 권리는 한국어에 유창한 고학력 백인 남성에게만 허락된 것인지, 이민들에 대한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선택적 환대만으로 우리는 지구촌 이웃들에 대한 예를 다했다고 치부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김은영(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