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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892) 사랑하기 / 김동일 신부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
입력일 2014-10-21 수정일 2014-10-21 발행일 2014-10-26 제 2916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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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마태오 22,34-40)
내게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일까? 내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내가 무엇을 위해, 무슨 낙으로,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한 질문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참 의미 있는 초대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의미를 두며, 어떻게, 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하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답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

내 삶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 세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지극히 상호적인 것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다른 이웃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위하게 됩니까? 아닙니다.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해야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어서 행복하지 못하면 그 불행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방치해둔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이웃의 아픔과 도움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이웃 사랑이 정말 하느님께서부터 나오는 그런 성숙되고 진실한 사랑인가 생각해 봅니다. 사랑은 희생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 희생조차도 사랑이고 기쁨입니다. 의아함이나 의구심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나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크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사랑하고 있는 우리를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하느님은 우리들을 대견하게 보시며 흐뭇해 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이라는 기준과 가치로 살아간다면 궁극적으로 기쁘고 행복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고, 우리와 함께하는 이웃들입니다. 세상이 행복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이 좋은 ‘사랑하기’가 안타깝게도 일상에서는 시기와 질투, 탐욕에 뒤처집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화, 짜증, 불만, 불평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하기를 어떻게 하면 쉽게 그리고 내 삶의 최우선으로 할 수 있을까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보세요. 내가 그런 사람인데 또 누구를 찾아가 보란 말이야! 세상에는 내가 나눠줘야만 하는 그런 분들이 최소 한 명 이상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지금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나눌 수 있는 어떤 것 한 가지는 있습니다. 가난은 나눌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눌 마음이 없는 것이 가난이 아니겠습니까!

가난한 이들의 눈을 마주하고, 그분들의 손을 잡을 때 우리 마음 안에는 ‘사랑하기’가 자리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모를지라도 ‘사랑하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마음이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향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웃과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하느님을 사랑하면 행복해지니까요.

‘사랑하기’가 우리 삶의 최우선이 될 수 있기를 하느님께 청합니다. 그것이 내가 사랑받고, 행복해지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