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57) 순교, 순교자 ①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10-21 수정일 2014-10-21 발행일 2014-10-26 제 291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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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어르신들 앞 ‘순교자’ 강의…
예전에 어느 본당 단체에서 ‘한국 천주교회 초기 순교자의 삶’에 대해서 강의를 요청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남성 단체라는 말만 듣고 갔는데, 역시 남자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봉사자로 두 분 정도의 여성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강의실 안에서는 아마도 강의 시작 전 30분 정도부터 먼저 와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전형적인 한국 어르신들이 계셨습니다. 남자 분들 특유의 상기된 표정인지, 근엄함 표정인지를 모를 무덤덤 혹은 무뚝뚝한 모습으로 강사인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속으로 한숨이 흘러나왔습니다. 생각보다 연세들이 너무 많았고, 평균 연세가 70세는 족히 돼보이는 분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아마도 내가 그 곳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라 더 그랬나 봅니다. 그리고 강의 등장 앞에, 수군수군!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의 표정이 못마땅한 듯, 그분들 마음속으로 ‘저 어린 신부가 뭘 안다고 우리 앞에 서 있는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처럼 서로가 어색, 어색한 순간이었습니다.

암튼 나는 강사랍시고, 어르신들 앞에 상냥한 눈인사를 한 후 전혀 상관없는 강의 자료를 펴 보면서 마지막 강의 내용을 살짝 훑어보는 척 하였습니다. 강의 시작 시간을 봤더니 아직도 5분이나 남았습니다. 어색함을 진정시키려 탁자 위에 놓인 물 한 잔을 벌컥 마셨습니다. 근데 ‘칵’ 뜨거운 녹차였습니다. 입천장은 데인 것 같은데, 어르신들 앞에서 표정은 그렇게 지을 수 없어 다시 조용히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 척 하였습니다. 그런데 드는 생각은 ‘이거, 위장까지 얼얼 뜨겁네!’ 그런데 수강하는 어르신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심이 없는 듯,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빠짐없이 내 동작을 노려보고, 째려보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린 신부가 차도 제대로 못 마시네, 그려!’ 하는 표정으로.

차도 무척 어렵게 마셨겠다, 이 깊고 깊은 평온한 적막감이 드는 분위기를 살릴 방안이 뭐 없을까, 처음에 강의 시작을 무슨 말로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 그게 좋겠다!’ 갑자기 이 분들이 순교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신지를 여쭈어보고 싶었습니다. 강의 시간이 되자, 천천히, 괜히 근엄한 목소리로 시작 기도를 한 후에, 자연스럽게 수강자 어르신들에게 인사와 함께 질문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강의를 맡은 강석진이라고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 초기 순교자의 삶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부탁 받았는데 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순교자에 대해서 아시는 이름이 있으신지요?”

질문에 약하고, 특히 질문에 답하는 것에 더 약한 어르신들의 무덤덤한 표정! 분위기는 더 써-얼-렁! ‘순교자가 뭐여’하는 눈치였습니다. 이 차가운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 나는 쉬운 힌트까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가까스로 몇 몇 분의 순교자 이름이 나왔습니다. 정말 어렵사리 익숙한 순교자 분들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아, 이 반응, 너무나 고마우셔라! 이름들이 나오자 옆에 분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도 알고 있는디, 대답은 안 했어!’ 하는 표정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때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손을 번쩍 들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이끝순이요, 끝순이!”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