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해설] 바오로 6세 교황은 누구인가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4-10-21 수정일 2014-10-21 발행일 2014-10-26 제 291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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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혁신 이끈 ‘위대한 키잡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끌며
쇄신·변화로 교회 현대화 주도
최초 해외 사목방문 시도 등
세상 향해 교회 문 활짝 열어
바오로 6세 교황.
19일 시복된 바오로 6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대한 키잡이’라고 칭송할 만큼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1969년 한국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을 임명한 교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를 처음 설립한 그의 시복예식은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 폐막미사 가운데 이뤄져 더욱 특별하다.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Gio vanni Battista Montini)가 본명인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도중인 1963년, 제262대 교황으로 선출돼 1965년까지 공의회를 이끌며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모습에 이르도록 한 인물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에 이어 공의회 문헌을 반포하고 결의사항 등을 실행했으며, 공의회 후속 조치로 전례 개혁과 미사 중 라틴어 대신 모국어 사용,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대화, 이웃 종교인 및 무신론자들과의 대화 등을 가능하게 하며 혁신적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1965년 주교대의원회의를 설립해 지역 주교들에게 교황에 대한 자문 권한을 부여하는 영속적 기구로 두었으며, 재임 기간 중 추기경을 꾸준히 늘리고 제3세계 출신을 발탁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 6대륙을 모두 사목 방문한 최초의 교황, 세계성체대회 개최지인 인도를 방문해 아시아 땅을 밟은 최초의 교황 등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실제로 그는 예루살렘 성지순례와 아시아, 터키, 콜롬비아, 중앙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을 방문하며 되도록 많은 이들과 만나기 위해 애썼다.

그는 평신도와 여성의 교회 참여 증진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1964년 여성, 수도자, 평신도의 공의회 입회를 허용했고, 1970년 여성 최초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를 교회 학자로 선포했다. 또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받았던 삼중관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진취적 행보는 교황 선출 전부터 교회 안팎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기울인 다양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 문제, 유대인 문제, 전쟁으로 집을 잃은 무주택자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하게 활동했다.

또 1954년 이탈리아 밀라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후에는 교회를 떠난 노동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러 작업장을 찾아다녔으며, 평신도 사도직과 문화 활동 장려, 청소년 문제 등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번 바오로 6세의 시복은 기존 시복 절차와 같이 전구를 통해 일어난 기적을 승인받아 결정됐다. 본인과 태아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낙태를 권고 받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임신부가 이탈리아의 한 수녀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그 수녀가 바오로 6세의 상본과 제의 조각을 임신부의 배에 놓고 기도한 후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9일 이 기적을 승인해 시복을 결정했으며, 10월 19일 시복예식을 거행했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