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 이경숙

이경숙(로사리아·수필가)
입력일 2014-10-14 수정일 2014-10-14 발행일 2014-10-19 제 291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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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번쩍 손을 드신다. 강론시간도 아니고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도 아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신부님, 잠시 미사를 중단하고 물으셨다.

“무슨 일이십니까?”

손을 들었던 할머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신부님, 이 자매님이 가스 불을 켜놓고 나왔대요. 아무래도 큰일 날 것 같은데 가봐야겠어요.”

왁자하니 난리가 났다. 가스 불 켜놓은 채 집을 나와 음식을 태우거나 집에 불을 내는 아줌마나 할머니들의 사연, 얼마나 흔전한가. 미사 중 태도가 불량한 것도 용납 못 하시는 신부님이지만 할머니의 행동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클클거리시더니 다녀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당사자 한 분만 가시는 게 아니다. 손들고 용기 있게 신고한(?) 할머니랑 두 분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허정허정 나가시는 것이다.

10분이나 지났을까.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소동을 피우며 성당 문을 나선 두 할머니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나란히 줄지어 들어오신다. 신부님께서 대표로 물으신다.

“가스불은 괜찮았어요?”

두 분 할머니, 아이처럼 히죽 웃으며 이렇게 응답하신다.

“안 끈 줄 알았는데 끄고 왔더라고요.”

우리가 하느님 앞에 이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지 말고 손 번쩍 든 다음 “하느님, 제가 어찌 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곤경에 처한 이웃의 아픔을 하느님께 아뢰고, 기꺼이 마음 한 자락 꺼내어 이웃과 동행한다면 그분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없다’ 하지 않는가.

이경숙(로사리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