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발레리나 김주원 씨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4-09-30 수정일 2014-09-30 발행일 2014-10-05 제 291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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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춤’ 통해 하느님이 전달되기를 따뜻함 느껴지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자유롭게 표현해주는 도구 ‘발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초등 5학년에 시작

중 2때 선발…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로 유학

하루 4시간 자며 춤추는 ‘연습벌레’로 정평

뮤지컬·방송·라디오 DJ 등 다양한 활동도 펼쳐

작년 6월 영세… 새내기 ‘신앙’

성직 수도자 만나면서 희생·봉사 참뜻 배워

소외된 아이들에게 무료 발레 교육 진행도

믿음 가진 후 공연 앞서 항상 기도로 준비

김주원씨는 사람들이 자신을 떠올렸을 때 잔잔한 감동을 느끼는, 그런 인물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하느님을 알게된 후, ‘춤’의 느낌이 더 좋아졌어요. 느낌도 깊어 졌습니다. 관객들에게는 한결 따뜻한 춤을 보여드리게 된 것 같아요. 마음의 여유도 생기게 됐구요.”

김주원(힐데가르트·서울 옥수동본당)씨. 1998년부터 2012년까지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15년간 활동한 그는 지난 2006년 강수진씨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발레계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춤의 영예)’를 받은 ‘한국 발레계의 보배’다.

클래식 발레뿐만 아니라 뮤지컬·방송 출연·사진모델 등으로, 최근에는 라디오 DJ까지 도전하며 종횡무진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그에게 이제 ‘춤’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바로 “나의 춤이 기도가 될 수 있다”는 면이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동료 문화 예술인들과 함께 ‘코이노니아’ 뮤직 비디오에 참여했던 그는 지난 7월 30일 ‘코이노니아, 우리 모두 선물이 된다’ 주제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교황방한 축하음악회에서도 발레 공연을 맡았다. 그는 그때 느낌을 “너무 행복했다”고 표현했다.

“성당에서 춤을 춘 것은 처음이었어요. ‘정말 여기서 토슈즈를 신어도 될까’하는 조심스런 마음도 있었지만, 교황님의 한국 방한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나의 춤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새내기 신자

그는 영세한 지 일 년 남짓한 새내기 신자다. 아직 교리도 모르는 게 많고 미사 전례도 익숙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 처음에는 코이노니아 뮤직비디오 참여도, 음악회 출연도 고사했었다. 하지만 “신자 문화 예술인들이 함께 모여 뜻을 모으는 작업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지인들 격려에 마음을 돌렸다.

“교황 방한은 신자들에게만 뜻 있는 행사가 아니잖아요. 신자와 대중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동료들이 뜻을 모으는 기회인 만큼,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새롭게 했죠.”

그가 ‘하느님’께 마음을 열게 된 것은 순전히 자발적 의지에서였다. 한 운동모임을 통해 가깝게 지내던 두산그룹 박용만(실바노) 회장과의 인연이 다리가 됐다. 언젠가 박 회장과 함께 부산 마리아수녀회를 방문했던 그는 수녀회를 통해 ‘봉사’의 의미,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나눔의 뜻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즈음 알게 된 한 수도회 사제와의 만남도 영향이 컸다.

따뜻하게 맞아주고 한없이 열려있는 성직·수도자들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수녀회서 외롭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시선이 돌려졌다. 그래서 아이들 무료 발레 교육도 시작했다.

성직·수도자들, 아이들과의 만남은 ‘무대를 준비 할 때부터 내려올 때까지, 춤추는 순간에도 관객들이 환호하는 순간에조차 외롭고 힘든’ 그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고 한다. 그 사이 춤 이외 다른 것에 자신을 맡겨 보지 않았던 마음 안에 차차 ‘신앙’이라는 것이 자리 잡았다.

“신부님 수녀님들과의 만남이 좋았어요. 타인에게 열려 있는 희생 봉사의 모습에도 진심 어린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었습니다. 아, 이런 분들이구나! 다시 한 번 보게 됐죠.”

‘힐데가르트’를 세례명으로 정한 것은 영적 지도 신부의 권유에서다. 독일 수녀로서 예술가·작가·카운셀러·언어학자·자연학자·과학자·철학자·의사·약초학자·시인·운동가·예언자·작곡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던 힐데가르트 성녀 모습은 클래식 발레를 20년 가까이 하면서도 ‘돌연변이’처럼 다른 분야서 자주 외도를 감행하는 자신과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성녀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된 것도, 좀 더 열심히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요.”

2013년 6월 12일 세례를 받던 날, “무언가 찡한 마음에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피아니스트 노영심 (마리보나)씨가 그의 대모다.

‘지젤라인’

김주원씨는 ‘흰 피부, 작은 얼굴, 긴 목과 팔, 아름다운 상체가 압권’이라는 평을 듣는다. 또 ‘백색발레’(흰 의상으로 출연하는 발레)에서 빛나는 무용수로 꼽힌다. 가늘고 긴 목덜미에서 팔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감성표현미, 이른바 ‘지젤 라인’이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예전의 그에게 상체라인은 콤플렉스였다. 도드라진 팔꿈치, 툭 불거져 나온 목뼈가 걸림돌이었다. 아름다운 선을 보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정도 이상으로 팔꿈치를 돌리고 어깨를 움직이며 라인을 만들었다. “고통이 수반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장단점은 한 끗 차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발레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부모님 손에 이끌려 음악 체육의 여러 분야를 섭렵했다. 육상 선수, 태권도 선수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이겨야하는 기록 싸움이 싫었다고 한다. 발레는 지겹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배운 지 3개월 만에 콩쿠르에서 상을 탔다. 발레와의 인생은 이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그는 선화예중 2학년 때 내한한 러시아 안무가에게 선발돼 볼쇼이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인사말조차 하지 못했던 처지에서, 또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하루 4시간씩 자며 새벽에 몰래 홀에 들어가 바를 잡고 연습하며 춤을 췄다. 수업을 듣기 위해 문장을 통째로 외우며 말을 배워나갔다. ‘오기’, 그리고 오로지 ‘연습’만이 견디는 힘이었다. 그런 지독한 근성은 우등 졸업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1998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김씨는 ‘해적’의 메도사 역으로 국내 무대에 데뷔했다.

‘연습벌레’로 소문나 있는 김주원씨. 한 달 평균 사용하는 토슈즈는 20여 켤레다. 지금도 매일 아침 연습을 빠트리지 않는다.

“발레 때문에 항상 외롭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춤 때문에 위로 받고 행복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 춤, 발레는 나를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게 또 자유롭게 표현해주는 도구인 것 같습니다.”

발레는 ‘리허설’, 하느님은 ‘천군만마’

그에게 ‘발레란 무엇일까’. ‘리허설’이란 답이 돌아왔다. 전설적 발레리나 갈리노 울라노바가 저서에서 밝힌 말이기도 하다. 다음 공연을 앞두고 행하는 실질적인 준비라는 면에서, 또 인생의 희로애락을 앞서 배울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어릴 적에는 춤을 통해 사랑, 질투, 분노 등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배울 수 있었죠. 어느 순간부터는 춤에 인생이 녹아나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 발레는 내일 공연을 위한 리허설이기도 하고, 인생의 리허설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는 ‘어떤 발레리나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반드시 춤이 아니더라도 김주원을 떠올렸을 때 사람들이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8월말부터 맡고 있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진행도 바로 그런 맥락이라고 소개했다.

오랫동안 국내외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해온 일도 마찬가지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발레라는 틀 안에서 보다 전문적인 지식으로 뭔가 나누는 일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제 ‘믿음’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큰 지렛대가 됐다.

그래서 하느님은 ‘천군만마’같은 존재다. “좀 더 일찍 하느님을 알게 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뒤늦게 신앙을 갖게 된 것 또한 나름의 뜻이 있을 것이라 느낀다”고 했다. 어머니와 가족들도 함께 신앙을 갖도록 성당으로 이끌 예정이란다.

“제 무대에 기도가 생겼어요. 이전에도 늘 공연에 앞서 하나의 지향을 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의 춤을 통해 관객들이 따뜻함을 느끼게 됐으면, 또 춤에서 하느님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기도합니다.”

‘춤’을 추는 예술가로서의 삶도 이제 그 이유와 의미를 하느님 안에서 바라보게 됐다는 김주원씨. “요즘 춤추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육체적으로 더 힘들고 아프기도 하지만 행복하게 춤을 출 수 있는것 같고, 주변 사람들이 감사하게 느껴져요.”

해맑은 미소 속에 하느님을 향해 뛰어 오르는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가 오버랩 됐다.

■ 김주원씨는

1997년 볼쇼이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국립발레단에 입단, ‘해적’ 주역으로 데뷔했다.

2006년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여성무용수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객원 주역무용수로 초청돼 공연했다.

2012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문화예술대학 무용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립발레단 객원 수석 무용수를 맡고 있다.

2014년부터 유니버설 발레단 상임 객원 수석 무용수도 겸임 중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