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유럽 동방정교회 수도원 순례기 (3·끝) 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 지역

노춘석(멜라니아·창녕공고 교사) ,사진 김상희(데레사·대구 성 안드레아본당)
입력일 2014-09-30 수정일 2014-09-30 발행일 2014-10-05 제 291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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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빚어낸 절경의 땅… 종교 상처 이겨낸 ‘희망’을 보다
검은 산 몬테네그로 ‘오스트로그수도원’
11C 십자군원정, 물자 조달 위해 
발칸지역서 약탈 일삼는 등 횡포 부려 
그 보복으로 동방교회 쇠퇴했지만
900m 암벽에 수도원 건립하며 존속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가톨릭 나라의 문화예술 중심지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한다는 장소”
거대 성벽·수도원·교회 하나로 어울려
가톨릭의 나라 크로아티아의 ‘천국 도시’ 두브로브니크 전경.
■ 바위산의 파노라마 몬테네그로 암벽수도원

우람하게 깎아지른 석회암벽 사이로 흐르는 급류와 침엽수림길이 지그재그로 휘도는 아름답고 웅장한 산 속에는 흰 감자꽃밭 외에는 별다른 농작물이 보이지 않았다.

검은 산을 의미하는 몬테네그로는 주변국 내전에 개입하며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돼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2006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하였다.

11세기 십자군원정은 이슬람이 점령한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하느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는 기치 아래 8차례 출정하는 동안 발칸지역을 지나가며 물자를 조달하고 약탈과 만행을 저질러 동방교회의 원망과 불신과 배신감을 깊게 했다. 십자군에 대한 보복으로 오스만 터키군이 올라오고, 점령 당한 발칸은 고난의 시대로 접어들며 동방교회는 쇠퇴의 길을 걷고 저항과 순교가 이어졌다. 요한 바오로2세는 동방교회를 향한 십자군에 대한 사죄로 참된 종교인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동로마시대 교통의 요충지였던, 2천 급 산줄기들로 빙 둘러싸인 수도 포드고리차 인근에 있는 오스트로그암벽수도원은 몬테네그로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다.

헤르체고비나대주교 성 바실리예는 오스만군을 피해 수도자들과 함께 1665년 제다계곡 깊숙한 900m 바위절벽 동굴에 오스트로그수도원을 세웠다.

바실리예의 유해를 모신 바위벽 성십자가 동굴성당에는 연간 백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방문하여 다양한 기적을 체험하는 회개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까지 2.6㎞ 산길계단을 오르는 여자들은 긴 스커트에 어깨까지 수건을 휘감아 예를 차리고 우리는 셔틀버스로 편하게 도착했다. 1671년에 떠난 성인을 뵙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고요히 기다리는 순례자들 뒤로 청록의 제다비탈은 향냄새로 은은했다. 성수와 초를 구입하는 사람들로 줄은 다시 길어졌다.

기적수로 이름난 성수와 동굴방에 소망의 촛불을 밝히는 것은 순례자에겐 아주 중요한 일이다. 수많은 촛불이 타는 방에서 잡다함을 태우고 바위절벽에 달라붙은 신앙을 얻어 영혼을 맑게 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도 확고하고 절절한 마음으로 기적을 기대했다. 포탄이 박힌 동굴성당에서 성 바실리예의 관에 친구하는 깊은 사랑은 지나는 이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고, 성인께 편지를 쓰는 순례자들 틈에 끼어 좁은 베란다 포도나무에 달린 송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단단한 가지가 되도록 한글 편지를 적었다.

■ 아드리아해의 낭만 사비나수도원

높은 산맥을 넘고 넘어 나타난 아드리아해를 따라 지상의 낭만을 더해준다는 헤르체그노비 근교에 있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사비나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감동 그것이었다.

1030년 오스만군을 피해 헤르체고비나 주교가 자리 잡은 후 중세 세르비아 왕들의 유물을 보관한 수도원 정원에서 보는 바다는 프레스코화의 두꺼운 어둠을 걷고 얇은 보석같이 빛났다.

수도자들의 삶은 고요한 바람처럼 스며들고 유일하게 남은 성모 이콘은 지극한 공경을 받고 성모자 이콘에는 손이 하나 더 있었다. 다마스쿠스 성 요한은 터키군에게 손이 잘려 아토스산 수도원에 보관된 후 성모화에 그려 넣는 전통이 생겼다. 두세 명의 수사가 생활하는 사비나수도원은 시리도록 푸른 아드리아해와 함께 추억이 되었다.

휴가지에 몰려든 차량들로 심한 정체를 이룬 헤르체그노비의 오래된 좁은 골목과 성곽과 상점이 총총한 비탈진 구시가지 앞 바다에 검은 구름덩이가 거꾸로 날리는 깃발처럼 내리꽂히고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며 폭우가 퍼부었다. 도로는 급류가 되고 굵은 비는 풍경을 막으며 산의 나라 몬테네그로에서 우리는 하늘세례를 듬뿍 받았다.

■ 가톨릭의 나라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죽기 전에 보아야 한다는 두브로브니크, 지상의 천국, 아드리아의 진주에 대한 꿈을 안고 부겐빌레아가 커튼처럼 드리운 헤르체그노비를 떠나 보스니아를 거쳐 찬란한 태양과 짙은 바다를 따라 정교회의 땅 끝, 가톨릭나라 크로아티아로 들어섰다.

베네치아와 경쟁하며 막강한 부를 축적한 두브로브니크는 유럽인이 선망하는 휴양지로 성채와 성벽과 수도원, 종탑과 교회와 건물들이 도시의 영화를 담고 달마티아지방 문화예술 중심지로 길이 2㎞, 높이 23m 성벽을 두르고 있었다.

성 블라시오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지상 천국순례는 발칸 정교회의 구불거리는 산길을 지나 고향에 닿은 순례자처럼 감회 깊었고, 사랑의 삶에 대한 강론은 천국도시의 강렬한 메시지가 되었다. 아르메니아 귀족출신인 목병의 주보성인 블라시오십자초에 순례단은 축복을 받았다. 성당모형을 든 은조각상은 귀한 보물로 1706년 화재에서 유일하게 남아 이 도시의 전통이 되었다.

14세기 건축물로 역사적 자화상이 된 프란치스코수도원의 르네상스풍 웅장한 현관을 지나면 유럽 최초의 약국이 지금도 운영되고, 제약박물관에는 중세 약 제조법 서적과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대 서적 필사본과 초판본이 소장된 수도원은 프레스코화와 섬세한 기둥장식과 정원이 유명하고 스트라둔 입구 성벽을 따라 길게 서 있다.

햇볕 따가운 오후, 10세기에 건설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벽 위에 오른 순간, 도시와 아드리아해와 산과 하늘-그곳은 지상의 천국이었다. 중세적 기풍과 위엄을 지닌 프란치스코수도원과 도미니코수도원의 덩치는 압도적이고 석조계단이 우아한 도미니코수도원은 아드리아해에서 가장 큰 고딕건축물로 문화유산을 대표하며 두 수도원의 ㅁ자형 건물과 정원은 시대를 초월한 지상의 예술품이었다. 대성당과 종탑, 궁전과 요새와 스트라둔거리 인파들, 오르막 빼곡한 골목 속의 삶들이 숱한 세월을 지나 눈앞에 펼쳐지는 중세도시는 긴 시간 역사 속에 만들어지고, 충만하게 빛나는 여정을 그득히 담은 저녁 석양은 천지를 물들이며 아드리아해와 하늘을 마음껏 불 질렀다.

■ 크로아티아 중세 해변도시

로마황제가 된 달마티아 천민 출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건설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스플리트의 거대한 궁전을 둘러보고 그리스인들이 2300년 전 정착한 발칸의 작은 베니스 역사유적지 트로기르로 갔다. 그리스와 로마, 베니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트로기르에는 복잡한 미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크로아티아 최고 걸작 성 로렌스 성당과 도미니코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의 돋을새김 검은 목재조각의 높은 천장 성당에는 수도승의 침묵이 수 세기 동안 배어있고 진리를 수호하며 철저히 자신을 낮추며 주님 오심을 준비한 수도자의 원형인 세례자 요한의 삶을 따르라는 강론을 새기며 시베니크로 떠났다.

아드리아해안의 비탈진 골목과 계단과 상점과 광장들이 많은 시베니크의 성 야고보성당은 달마티아 건축가 유라이 달마티나츠가 독특한 기법으로 개축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사기간이 100년 이상 걸렸으며 성당 외벽의 달마티아인 71명의 얼굴조각상은 도시의 명물이 되었다. 요새 아래에 있는 교회의 사이프러스 사이로 내려다본 해변의 빛바랜 풍경은 순례 끝의 서운함을 더해주었다.

■ 발칸에 기쁨과 평화의 축복을!

발칸을 떠나며 스플리트 구시가지 성 필립보 네리성당을 찾았다. 500년 전 교회가 고통을 겪을 때 기쁨과 희망과 행복의 이름 네리 사제가 나왔다. 몬테카시노수도원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그는 마흔 살에 사제가 되어 가난한 이웃에게 기쁨을 전하며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었다. 네리성당에서 바치는 마지막 미사는 발칸의 아픔을 지나온 상징이 되었다. 종교로 인한 고난의 역사가 마감되고 오직 사랑과 평화의 축복으로 동방정교회 형제들이 아름다운 대자연에서 네리 사제의 기쁨과 행복을 나누며 하늘의 보석으로 반짝이기를 기원하며, ‘나’를 통해 하느님이 나눌 수 있는 희망을 안고 우리는 발칸순례를 마감했다.

헤르체고비나대주교 성 바실리예가 오스만군을 피해 900m 바위절벽 동굴에 세운 오스트로그암벽수도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플리트의 궁전과 종탑.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사비나수도원.

노춘석(멜라니아·창녕공고 교사) ,사진 김상희(데레사·대구 성 안드레아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