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내 아이는 무엇을 먼저 배워야 할까? / 권길중

권길중(바오로·한국 평협 회장)
입력일 2014-09-30 수정일 2014-09-30 발행일 2014-10-05 제 291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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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산업이 발달하고 직업의 종류가 다양해짐에 따라 셀 수 없을 만큼 자격증의 종류가 많아졌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소위 ‘스펙’을 쌓는다면서 자기 희망 직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런저런 자격증 따기에 시간과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 어지러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머니 자격증, 아버지 자격증’ 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혼인성사를 준비하는 남녀가 교회로부터 결혼준비교육을 받는 것은 맞지만, 거기서도 어떤 어머니가 되고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육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짚어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하면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를 몰라서 남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그대로 다른 사람들의 육아경향을 따라가거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성능과 관계없이 비싼 외제 유모차를 선호하고, 같은 것이라도 장난감 가격을 높게 매기면 더 잘 팔리는 것과 같은 육아용품의 고급화 바람이 그 좋은 보기일 것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정부당국에서 유모차의 성능검사를 실시한 결과 비싼 외제유모차의 성능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발표였다.

조기교육열풍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항간에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3대 조건이 있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할아버지의 재산이고, 둘째는 엄마의 정보력, 셋째가 (기가 막혀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무관심이란다. 결국 할아버지의 재산으로 어머니가 선택한 좋은 사교육을 받는 데 애기 아빠는 이런 교육에 결코 반대의견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아기 하나를 키우는데 엄청난 돈이 들게 되고, 이렇게 많은 돈이 들으니 아기를 둘 이상 낳지 말아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주장이 상식처럼 번지게 되어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3년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18조 6000억 원으로 국민 1인당 평균 23만원에 이른다. 물론 이것은 정부의 추산이고 학부모들의 계산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경제대학의 교수 토마 피게티는 급증하는 한국의 사교육비에 대해서 경고했다. 사교육 시장은 교육의 불평등을 유발하여 부의 대물림이 공식화된다는 걱정이었다.

나는 이 문제가 갈등의 기초를 이루는 면에서 더 걱정스럽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의 불행을 상상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한 주간지에서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고도 아무것도 못 건지는 딱한 민족”이라는 제호의 교육문제 토론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서는 정말 모든 것을 다 바쳤는데 교육의 성과가 없음을 개탄하고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왕따 문제와 폭력문제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군에서는 적의 총에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우에게 맞아서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데 아직도 경쟁교육을 계속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부터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답은 명확해 진다.

부모의 가득한 사랑과 이해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게 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진영논리 때문에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려야 하는 불행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이것이 죽음을 이긴 ‘생명의 문화’로 들어가는 문이 될 것이다.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의 이야기에 공감할 줄 아는 넉넉한 아이로 기르는 것이 그 아이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라고 말씀하신다.

권길중(바오로·한국 평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