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데스크칼럼] 교황 방한 그 후… / 박영호 편집국장

박영호 편집국장
입력일 2014-09-16 수정일 2014-09-16 발행일 2014-09-21 제 291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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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다녀간 지난 8월 어느 닷새가 벌써 기억이 아득하다. 오시기 전에는 생고생이 뻔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언제 오시나 기대와 바람 속에 지냈다. 오신 다음에는 하루 두 세 시간밖에 못자는 강행군 속에서, 매일 쏟아지는 소식들과 메시지들, 그리고 장면장면을 빠뜨림없이 사진 속에 담아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정작 필자는 교황님 뒤통수도 직접 보지 못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그런가, 교황님이 지나가신 그 흔적들이 이제 그야말로 ‘한여름밤의 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어제였던 듯 싶기도 하고, 수십년 전 일인 듯 싶기도 하다. 정말로 ‘남는 건 사진 뿐’인가? 작업을 하던 컴퓨터 여기저기 구석마다 발견되는 교황님 사진들이 그때 기억들을 새로 되새기게 할 뿐이다.

정말로 그래서 그런가? 이제는 교황님이 전하신 메시지까지도 아득하다. 한국의 위정자들에게, 주교들에게, 성직자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전하신 말씀과 교훈들이 왜 이리 아득한가?

그렇게나 간절한 눈빛으로 사랑과 연민을 담아 건네주던 세월호 가족들에게도 여전히 바뀐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정작 교황님의 메시지들이 여전히 아득한 것이 분명하다. 물론 교황님 방한 일정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많은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으로 남았고, 그에 따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법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에게 못할 소리를 그만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잠시 짬이 나서 멍하게 있다보면 교황님과 함께했던, 교황님 때문에 꽤 고달펐던 그 닷새의 여운이 여전히 몸에 남아있다. 내 몸은 당시의 고단함과 함께 왔던 그 짧은 기간 행복의 여운을 즐기고 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을 달려 사진기자들을 광화문에 떨구고, 다시 차를 돌려 사무실로 향해서, 밤을 새운 탓에 어질어질하는 몸을 붙들고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그 여명의 기억을 내 몸은 여전히 행복한 추억으로 새기고 있다. 몸이 기억하는 그 시간의 기억들은 아마도 머리 속에 이미 새겨진 교황님의 메시지들로 다시금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신앙과 삶 속에서 그 메시지들은 모든 판단과 행위의 지침으로 분명히 힘을 발휘할 것임을 안다.

기대하고 희망하는 바, 아마도 모든 이들이 필자와 같을 것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을 지라도 교황님께서 우리들에게 건네신 그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들을 우리는 몸으로, 마음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어리벙벙해서 교황님께서 친절하지만 얼마나 단호하고 강력하게 사랑과 희망을, 그리고 변화와 쇄신의 메시지를 전하셨는지 분명히 깨닫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몸과 마음 속에 기억으로 남은 메시지들은 두고두고 우리의 삶을 인도할 것임을 안다.

교황 방한 이후 전국 각 교구에서는 특별히 순교자 124위의 시복을 경축하고 감사하는 행사가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다. 교황님의 방한이 하나의 이벤트로만 남지 않도록, 124위의 복자 탄생이 하나의 민족적 자부심의 빌미로만 남아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몸에 남은 교황님의 기억이 마음자리에 옮겨져 삶 전체를 이끌도록, 새로 탄생한 순교 복자들의 신앙과 삶이 내 삶의 지침이 되도록 기억을 새롭게 해야 하겠다.

박영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