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신앙의 자유? / 이도경 기자

이도경 기자
입력일 2014-09-02 수정일 2014-09-02 발행일 2014-09-07 제 291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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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과 신앙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주일을 빠지지 않고 지키지만 월요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의 이치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생을 투신해 사제나 수도자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생계를 꾸리기 위한 사회활동과 실천적 신앙의 기로에서 늘상 갈등하는 존재다. 그만큼 사회의 흐름이 복음적이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기자는 지난주 시골에 있는 한 봉쇄 수녀원에 취재를 다녀왔다. 몇 년 전 이곳 수도자들과의 첫 만남은 신앙을 어떻게 삶으로 온전히 살아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해준 곳이다.

수녀들의 수방(숙소)에 비가 줄줄 새 비닐을 덮고 잠자리에 들어야 함에도 “가난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23명의 수녀들이 공과금을 제외하고 한 달에 50만 원으로 생활한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터뷰 내용으로 당황하게 만든 가르멜의 모후 수녀원이 바로 그곳이다.

이번 취재에도 여지없이 원장 수녀님의 말씀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수녀님, 건물이 거의 완성되었다면서 왜 천장도 벽면도 공사 중인 것처럼 아무것도 없나요?”

“수녀들에게 기도할 수 있고,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치장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은인들이 십시일반 기도로 모금으로 도와준 곳이지만 이곳의 수녀들에게는 기본적인 안락함이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이렇게 신앙과 기도에 전력투구하는 수녀들의 얼굴은 오히려 평안하기만 했다.

스스로 봉쇄하고 작은 골방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신앙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핑계로 방종의 세상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의 자화상보다 오히려 더 크고, 깊은 자유와 기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