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황의 아시아교회 향한 행보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4-08-19 수정일 2014-08-19 발행일 2014-08-24 제 290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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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교회 ‘대화·연대’ 새로운 장 기대
성장 잠재력 지닌 대륙
신자 증가율 높은 아시아
영적 가치에 대한 갈증 커

지역복음화 첫걸음 ‘대화’
세속화·물질주의 등 도전 맞서
열린마음으로 복음 증거 요청
“대화, 아시아교회 사명 본질”

형제적 대화로의 초대
바티칸과 수교 맺지 않은
아시아 국가와의 대화 시사
중국과 관계 문제엔 ‘신중’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요한 방한 일정의 하나는, 124위 순교자 시복식과 함께 제6차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이었다. 교황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대륙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아시아 청년들에게 “깨어 일어나라”고 당부하고 아시아 순교자들의 영광이 젊은이들에게 비추어 아시아의 참된 복음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제삼천년기 보편교회의 기대와 희망은 아시아에 주어져 있다. 아시아에 주목하는 교황과 세계교회의 시선을 살펴본다.

교황청·보편교회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7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참석 도중 말미에 기자들에게 말했다.

“아시아를 방문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로부터 1년 뒤 교황은 한국을 찾아왔다. 그리고 내년 1월에는 스리랑카와 필리핀을 방문할 예정이고, 일각에서는 일본 방문도 점치고 있다. 즉 교황의 아시아 순방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앞둔 지난 11일 바티칸 라디오와의 기자회견에서 교황의 한국 방문이 중요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교황의 첫 극동 지역 방문이라는 점, 교회의 현재일 뿐만 아니라 특별히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를 만나러 간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시아 청년대회를 참석함으로써 한국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대륙 전체를 만나러 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교황청의 집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신자 증가율을 보이는 대륙은 아프리카, 그리고 그 뒤를 아시아가 잇고 있다. 아시아의 신자 증가율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11.4%. 아프리카의 20.4%에는 못 미치지만 1.3%에 불과한 유럽 등 서구 교회에 비하면 가히 교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은 3.2%, 아메리카(63.2%), 유럽(39.9%), 오세아니아(26%), 아프리카 (18.6%)에 비해서 턱없이 낮은 수치이다. 이처럼 성과가 부진한 것에 대한 비관도 가능하지만, 그만큼 선교의 잠재력, 즉 교회의 양적 성장 여력이 크다는 점은 긍정적일 수도 있다.

아시아 복음화, 삶으로 증거해야

하지만 파롤린 추기경은 통계와 숫자 너머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 세계와 모든 대륙들의 특징인, 세속화와 물질주의 현상들이 만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는 하느님을 향한 생생한 욕구, 영적 가치들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있습니다. 또한 처한 상황의 소용돌이에 맞서 변화하고 적응할 줄 아는 엄청난 생명력이 종교들에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의장 오스왈도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가톨릭계 통신사인 ‘아시아뉴스’와의 17일자 회견에서 “이처럼 방대한 대륙에서도, 작은 엔진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복음을 삶으로 증거해야 하고 다른 종교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복음적 가치를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FABC 신학위원회 위원장·필리핀 마닐라대교구장)은 더 직접적으로 “다양한 공동체로 구성된 아시아의 교회들은 숫자와 통계에 지나치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며 “아무리 작은 공동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글레 추기경은 “지금도 아시아 민족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응답하고 있다”며 “실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롤린 추기경과 마찬가지로 그라시아스 추기경과 타글레 추기경 모두 삶의 증거를 아시아교회의 복음화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 복음화, 장애 극복 위한 연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간 중 17일 해미순교기념전시관에서 마련된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아시아에도 몰려온 세계화가 제기한 도전들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세속화와 물질주의, 약화된 가족의 유대, 반생명적 문화, 개인주의로 무너지는 공동체 정신 등이 그것들이다. 홍콩교구장 존 통 혼 주교도 아시아 복음화의 가장 큰 장애를 물질주의의 만연으로 꼽았다. 결국 다양한 문화와 종교 전통 속에서도 현대 아시아교회는 세계화로 인한 공통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광활한 대륙에서, 교회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대화와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증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대화’는 아시아교회 사명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복음화를 위한 연대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여기에서 교황은 대화를 위한 전제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명확한 자기 정체성의 인식과 다른 이와 공감하는 능력을 지적했다. 그리고 정체성의 확립과 표현에 어려움을 주는 세속적인 유혹으로 상대주의, 피상성, 그리고 자기 안에 안전하게 숨어 있으려는 태도를 꼽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러한 경계와 권고들을 타글레 추기경은 ‘복음의 기쁨’을 통해 이미 명확하게 표명된 ‘선교적 자세’의 강조라고 말한다. 추기경은 “교황께서는 아시아 민족들에게 더욱 더 선교적이 되라고 초대하신다”며 “특별히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통해 비그리스도인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권고한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7일 해미순교기념전시관에서 아시아 주교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교황은 이날 아시아 복음화의 첫 발걸음으로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의식하고 다른 이와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사진 공동취재단

중국 등 비수교국, 형제적 대화로 초대 - 우리는 상대의 정체성을 박탈하는 약탈자가 아닙니다

교황은 아시아 주교들에게 주는 권고에서 대화와 열린 마음을 강조한 뒤, 결정적으로 “성좌와 완전한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아시아 대륙의 몇몇 국가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주저 없이 대화를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허심탄회한 대화의 자리로 초대했다. 교황의 이러한 초대는 우선적으로 거대한 나라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즉, 주교 서품 등을 둘러싸고 지속적인 긴장 관계 속에 머물러 온 바티칸과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의 일부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교황은 곧 이에 대해 해명했다. 현재 아시아에서 교황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나라는 중국, 북한,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브루나이 등 소수 국가들이다. 교황은 자신의 초대가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님을 밝혔다.

“저는 여기에서 단지 정치적인 협상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인간적이고 형제적인 대화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어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은 ‘정체성’을 박탈하려는 ‘정복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분석가들은 이를 두고 중국이 지속적으로 내정 간섭 등의 이유로 교황청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데 대한 해명으로 분석했다.

비록 교황은 중국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미리 쓰여진 원고를 그대로 읽은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설명을 붙임으로써 교황청과 중국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이에 대해 반드시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아시아 비수교국들을 모두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중국 정부는 14일 교황이 탄 비행기가 중국 영공을 지나는 것을 허용했지만 중국 가톨릭 신자들의 청년대회 참석은 최대한 막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17일 해미읍성에서 거행된 미사에는 홍콩과 대만에서 온 주교들을 포함해 총 80여 명에 달하는 주교들 사이에 중국 주교들은 단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신자들은 대거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공식석상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15일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한 홍콩 대표가 중국 가톨릭 신자들의 곤경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교황은 이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롬바르디 대변인은 “중국과의 관계 진전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면, 신중한 편이 낫다”며 말을 아꼈다. 중국 관계 당국은 “양국 관계 진전을 위한 건설적인 대화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확실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교황청과의 대화, 각국의 하느님 백성들과의 열린 대화는 아시아 복음화의 첫 걸음이다. 이미 아시아 지역교회들은 대화와 삶의 증거에 대한 필요성을 오래 전부터 공감해왔다. FABC의 창설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다각적인 모임들은 그 필요성을 공감한 결과이다. 이번 교황 방한을 통해서 아시아교회들의 대화, 교류와 연대의 필요성은 더욱 확고해졌고, 특히 한국교회의 아시아교회들의 연대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