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124위 시복식 이모저모

특별취재팀
입력일 2014-08-19 수정일 2014-08-19 발행일 2014-08-24 제 290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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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미소에… 시복 기쁨과 사회의 아픔 녹여내며 “비바 파파”
시복식 앞서 서소문 성지 참배

◎…프란치스코 교황은 124위 시복식에 앞서 서소문밖순교성지(이하 서소문 성지)에서 참배, 한국 순교자 시복의 의미에 힘을 실었다.

서소문 성지는 순교자들의 처형이 집행된 곳으로, 교황은 이날 순교자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죽어간 여정을 거슬러 올라 그들이 스러져간 장소에서부터 보다 높은 인간의 길을 깨달은 ‘복된 이들’로 선포하는 여정을 이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남녀노소 신자들은 물론 지역주민들과, 성지 인근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수험생, 성지 개발 관계자 등 500여명이 함께 한 자리에서 헌화와 기도, 교황 강복 등을 이어갔다. 특히 이 자리에는 서소문 성지 복자 27위 후손들도 초대돼 의미를 더했다. 교황이 헌화한 꽃바구니는 성경말씀을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중략, 로마 8,35~36)을 바탕으로 순교자들의 사랑과, 영광, 영원한 생명, 통회와 보속 등의 의미와 색을 담아 꾸몄다.

중림동약현본당 주임 이준성 신부는 “교황님과 함께한 기도의 시간은 이곳 서소문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마음이 오롯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순교정신은 자유와 평등, 사랑 등 모든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전국서 심야버스 타고 새벽 4시부터 입장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가 거행된 16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자원봉사자들과 행사 참가자들로 꼭두새벽부터 들썩였다.

시복 행사가 열린 광화문 광장 입장은 새벽 4시부터였지만 밤을 새워가며 전국 각지에서 버스와 기차 등을 이용해 행사장을 찾은 신자들은 입장 시작 훨씬 전부터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 수백 미터씩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렸다. 비표 확인, 금속감지기 통과 등 다소 입장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법도 했지만 교황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신자들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행사 전날 밤 11시에 출발해 일찌감치 행사장에 들어선 부산교구 농아선교회 수화봉사자 한영아(마리아·38·부산 범일본당)씨는 “교황님을 가까이서 직접 뵐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설렌다”면서 “가톨릭 신앙인 모두가 교황님이 바라시는 바를 함께 지향하며 힘을 모아나간다면 하느님께서 보시기 기뻐하실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가대 단원으로 봉사하며 고(故)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세 차례 뵌 적이 있다는 차희란(율리안나·51·춘천교구 철원 김화본당)씨는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를 택해 오시는 교황님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라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교황님의 메시지를 따라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마음을 먹게 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백건우씨 연주 후 함께 묵주기도

◎…동이 트지 않아 어두운 가운데서도 신자들의 광화문 광장 입장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신분 확인과 보안 검색을 거쳐 행사장에 입장한 신자들은 지정된 구역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도를 바치며 행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광장 주변도 사전에 행사 참가를 신청하지 못한 신자들과 교황 방한에 관심을 가진 이들로 속속 들어찼다.

5시30분쯤 여명이 밝아오면서 광화문 광장에 드리우고 있던 어둠이 벗겨졌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설치된 제대에는 높이 4.6m의 십자가가 8m 높이의 단 위에 우뚝 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대 왼쪽에는 한복을 입은 한국사도의 모후상이 놓였다. 장소에 비해 높이가 낮은 제단과 제대는 신자들과 눈을 맞추며 미사를 봉헌하고 싶다는 교황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행사장 입장은 행사 3시간 전인 오전 7시쯤 마무리됐다. 선선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미사를 기다린 신자들은 “날씨가 시복식을 도와주고 있다.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라며 날씨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털어냈다. 교황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신자들은 8시30분경 피아니스트 백건우(요셉 마리)씨의 연주를 듣고 난 뒤 한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세월호 유가족 보며 차에서 내려 위로

◎…서소문성지 현양탑 앞에 선 교황은 꽃을 바친 뒤 깊이 고개를 숙여 1분간 기도했다. 이후 신자들을 축복하고 일일이 손을 잡아준 뒤 시복식장으로 향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오픈카로 갈아탄 교황은 30분간 광화문 광장을 두 바퀴 돌며 신자들과 만났다. 교황은 카퍼레이드 내내 특유의 환한 미소를 띠고 신자들을 향해 십자성호를 그으며 축복했다. 경호원을 통해 갓난아기를 받아 안수기도도 해줬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광장에서 대여섯 시간씩 교황을 기다린 신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비바 일 파파(교황 만세)’, ‘프란치스코’를 외치며 교황을 뜨겁게 환영했다.

교황이 탄 차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천막 앞을 지나자 교황은 차를 멈추게 하고 차에서 내렸다. 유가족을 축복하며 위로를 건넨 교황은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김영오씨가 건네는 편지를 직접 받아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교황 수단에 달린 노란 리본 배지가 비뚤어진 것을 본 김씨는 배지를 바로 잡아주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교황에게 호소했다.

스마트폰 중계 보며 시복미사 함께

◎…시복식이 열린 광화문 행사장 일대에는 총 24개의 대형 LED 전광판이 설치됐다. 제대와 멀리 떨어져 교황을 보기 힘든 이들을 배려해서였다. 넓은 장내에서 전광판이 보이지 않는 신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로 이뤄지는 시복식 방송을 시청하면서 미사에 참례했다.

문은미(크리스피나)씨는 “비록 가까이서 교황님을 뵙지 못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교황님과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124위 복자화 공개되자 환호성 터져

◎… 교황의 시복 선언에 이어 김형주(이멜다) 화백의 124위 복자화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이 공개되는 순간 신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대구에서 새벽길을 달려온 배효운(율리안나·대구대교구 하양본당)씨는 “124위 순교자들의 모습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니, 정말 많은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고 선조들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에 앞서, 교황은 서울시청에서부터 광화문 앞 제단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며 신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사진 공동취재단
김종수 신부가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순교자 약전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강론을 하고 있는 교황 뒤편에 124위 복자화가 보인다. 사진 공동취재단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서소문 성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교황이 카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시복식 카퍼레이드 중 만난 어린 아기를 보듬고 있는 교황. 사진 공동취재단
시복식에 참례한 신자들이 교황을 향해 하트를 그리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시복미사에서 수화로 통역하고 있는 신부와 신자. 사진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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