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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준비 윤종식 신부 해설, 시복 예식 어떻게 진행됐나

정리=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4-08-19 수정일 2014-08-19 발행일 2014-08-24 제 290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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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청원… 시복 선언… 감사 예식으로 마무리
교황이 124위 시복문을 선포한 후(왼쪽) 한국교회를 대표해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장 안명옥 주교가 교황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주시기를 겸손 되이 청원합니다.”

지난 16일,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의 시복 청원으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시복 예식’이 시작됐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79위 시복식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8년 24위 시복식에 이어 한국 교회 세 번째 시복식이다. 앞선 두 시복식이 로마에서 열렸던 것을 감안하면 한국에서는 시복 예식이 처음으로 봉헌되는 셈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교황의 대리자가 거행하는 시복 미사를 이례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한국을 찾아와 주례했다.

이번 시복 미사가 한국 교회에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진행된 시복 미사 가운데 가장 핵심이자 상징적이며, 뜻깊었던 시복 예식의 순간을 교황방한위원회 윤종식 신부(가톨릭대)와 함께 되짚어 봤다.

■ 청원(Petitio)

한국 교회가 17년 간 통합 추진했던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예식은 소박하면서도 환희로 가득했다. 안명옥 주교와 시복 청원인 김종수 신부(로마 한인 신학원장)가 프란치스코 교황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시복 예식의 시작을 알렸다. 각 교구의 시복을 주교회의가 통합 추진했기에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안 주교가 한국 교회를 대표한 것이다. 또한 로마에서 사목하고 있는 김 신부는 124위 시복의 로마 주재 청원인을 맡아 수행했다. 한국 교회와 바티칸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청원 내용에는 ▲누구에게 청원하는지 ▲청원자의 신원 ▲청원의 내용 ▲마음을 다해 청원한다는 표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시복 예식은 시성식에 비해서는 간결한 편이다. 특히 세 차례에 걸쳐 청원하는 시성식과 달리 시복식에서는 한 번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이번 시복 미사는 평소 교황의 스타일대로 간결하면서도 담백했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청원인 김종수 신부가 발표한 약전이다. 시복대상자가 소수일 경우, 약전은 순교자의 위대함과 그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124위의 순교자를 짧은 시간 동안 소개하기란 쉽지 않았다. 역사적 고증과 기여를 비롯 124위 중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아 영적으로 성숙하려는 한국 교회의 의지도 담았다.

김 신부는 약전을 통해 “124위 순교들의 풍요로운 명성은 그들의 교구 안에서 그리고 한국 교회 전체 안에서 오늘도 생생하게 지속되고 있다”며 “많은 신자들이 그들의 목자들과 함께 이 순교자들의 영성을 드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 시복문(Formula Beatificationis) 선언

안 주교의 청원과 김 신부의 약전 낭독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고 부른다”는 내용의 시복문을 선포했다.

교황이 ‘사도적 권위’로 발표한 시복문은 청원 내용과 비슷하게 ▲누가 허락하는지 ▲청원자 ▲관계기관의 검토 ▲복자의 축일 등을 포함한다. 교황은 시복문 끝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를 올린다. 사도의 권위로 선포하지만 삼위일체의 힘을 빌린다는 것을 밝히는 부분이다. 이때 교황이 왼손에 들었던 십자가 형태의 목장은 교황의 사도적 권위를 상징한다.

복자 124위의 축일은 5월 29일로 정해졌다. 윤종식 신부는 “대표 순교자가 순교한 날짜를 축일로 정하지만, 윤지충 바오로가 순교한 12월 8일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다”며 “하여 윤지충 바오로가 순교한 전주교구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순교한 5월 29일로 축일을 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자 축일은 각 교구장의 재량에 따라 대축일 혹은 축일로 보내게 된다.

시복문 선포와 함께 124위 복자화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이 실물과 대형 화면을 통해 공개됐다. 복자화는 신약성경의 요한 묵시록에 묘사된 하늘나라의 영광을 모티브로 삼아 순교 복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 감사(Actio gratiarum)

순교자 124위가 복자로 선포되자 안 주교는 한국 교회를 대표해 교황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포옹을 나눴다. 감사 예식은 시복 미사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한국 교회가 주도적으로 일군 이번 성과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미사에 포함된 것이다. 지난 4월 바티칸에서 거행된 성 요한 23세와 성 요한 바오로 2세 시성식에서도 감사 예식이 마련됐다.

교황 스타일대로 간결한 전례 구현

시복 예식은 청원, 시복문 선포, 감사 순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미사 중에는 그 외에도 복자들의 영광을 드러내는 예식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기도 중에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신앙고백으로 당신 백성을 자라게 하셨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감사송에도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기도문을 일부분 인용한 감사송을 통해 교황이 처음으로 124위 순교자를 ‘복자’로 부른다.

다섯 개의 보편지향기도 중 세 번째, 네 번째 기도가 시복과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유은희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복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들의 모범을 통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 했으며, 중국사제인 이홍근 신부(마리아수도회)가 중국어로 ‘박해받는 교회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윤 신부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한국교회는 박해를 당하는 동안 보편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며 “이제 인도네시아, 중국, 이라크, 중동 등 종교탄압 받는 이웃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번 시복 미사의 큰 관건은 교황의 의도대로 전례가 구현되는 것이었다. 단순하지만 중심이 되는 의미가 드러나는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 교황방한위원회 전례분과에서 심혈을 기울였다. 그 중심에 순교자들이 있었다. 입당 행렬은 짧게 구성했고, 전례 해설도 없었다.

윤종식 신부는 “전 세계적인 영적 리더로서 보편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미사를 통해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준다는 의미를 증명하는 자리”라며 “성령이 함께 하셨기에 더욱 영광스러운 자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정리=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