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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100시간 함께 하며 위로와 치유 선물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4-08-19 수정일 2014-08-19 발행일 2014-08-24 제 290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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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밀양·강정… 교회, 나라의 삶에 온전히 참여하길”
16일 꽃동네 사랑의연수원을 찾은 교황이 수도자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4박5일간 일정을 마치고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많은 것을 남겼다. 그가 짧은 시간에 남긴 놀라움과 감동, 위로와 치유는 오랜 시간 동안 남아있을 듯하다. 교황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준 메시지와 가르침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교황 방한이 공식 발표되면서, 그 파급 효과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았다. 많은 이들은 1980년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가져다 준 한국 천주교회의 국내외적 위상의 제고와 급격한 교세 팽창을 기억한다. 이들은 즉위 1년도 안돼 타임지 표지를 기록한 대중적 인기, 파격적인 언행이 가져오곤 하는 인도주의적 감동, 특히 다른 ‘경쟁국’(?)들을 물리치고 오로지 한국만을 겨냥한 순방의 독보성에 도취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한국 천주교회의 상당히 세속적인 자부심과 긍지를 높여줄 것이며, 90년대 들어 침체 일로의 교세 증가율을 수직 상승시켜 줄 것으로 내심 기대한다. 양적 팽창에 대한 이러한 기대는 일부 외신에서 노골적으로 지적하듯, 성공적인 ‘종교 마케팅’의 의중으로 불리울 만하다. 더욱이 기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다른 종교들 중에는 교황 방한으로 인해 자기 식구들 중 상당수가 천주교 쪽으로 몰려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급기야 교황 방한 반대 운동까지 벌이는 촌극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방한 전 잡음 모두 불식시켜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는 교황이 한국을 ‘간택’한 이유가, 한국교회가 다른 나라 교회에 비해 상당한 업적과 성과를 냈기 때문이고 이에 대해서 교황과 교황청, 세계 교회가 높은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은은한 자부를 느끼기도 했다. 이해할 만하지만 겸손하지 못한 태도임은 분명하다. 교황 방한을 일종의 치적이나 업적으로 여기는 심리 역시 교황 방한의 본질은 아닌 듯하다.

또 일부에서는 방한 일정을 두고 교황의 본 뜻과는 다르다는 우려, 즉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이유로 일정 변경을 요청하기도 했고, 심지어 교황 방한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것까지 우려의 대상이었다. 또 일부 장애인 단체는 특정 복지시설 방문이 해당 시설의 부조리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정작 14일 한국 땅을 밟은 교황 프란치스코는 참으로 ‘고수’였다. 어떤 우려도, 기우도 불식시켰고, 여하한 형태와 의도의 불순한 개입도 무산시켰다. 그것은 소박하고 단순하며 사랑과 자비가 넘치지만, 동시에 단호한 교황의 캐릭터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복음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힘이었다.

위로와 격려 더 필요한 한국교회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교황이 도착해 주교단과 가진 만남의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환영과 감사의 뜻을 표시하면서 “한국교회가 특별히 많은 것을 이루었기 때문은 아니다”라며 교황은 항상 “힘들어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 갈등과 고뇌가 풀어지지 않는 곳을 찾아가셔서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기 위한 발걸음을 하셨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한반도는 분단의 아픔 속에서, 동북아 열강들의 힘 자랑이 벌어지는 곳, 급속한 산업화로 상처 받은 사람들이 신음하는 곳으로 고백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교황에게서 축하보다는 위로와 격려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이 고난의 땅에서 과연 복음적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4박5일간 이어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와 말씀은 많은 면에서 한국 주교회의 의장의 이러한 고백에 조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교황은 이미 교황으로 선출되고, 「복음의 기쁨」을 반포할 때, 한국교회에 그러한 자기 성찰과 철저한 교회 쇄신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냈었다. 그리고 직접 한국을 방문해서는 십여차례에 걸친 강론과 연설들에서, 그리고 고통 받는 이들을 어루만지는 손길과 눈길에서, 일관되게 한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현대사회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가치에 이끌리려는 유혹에 단호하게 저항해 스스로를 쇄신하며 고귀한 순교자들이 전해준 신앙 유산을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자양분으로 삼을 것을 간곡하게 권고했다.

가난한 이들과 연대

참으로 많은 의미와 열매를 맺은 교황 방한이지만 우리에게 남기고 메시지와 가르침들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교황은 아시아의 젊은이들을 만나 항상 희망을 갖고 깨어 있을 것을 당부했다. 이들과의 만남은 교황이 방한을 결심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교황은 아시아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은 곧 세계교회의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현재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미래의 주역이기에 교황은 이들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어떤 절망과 고난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길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124위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 역시 교황 방한의 결정적 이유였다. 하지만 교황은 결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103위 성인에 이어 또 다시 복자 탄생의 기쁨에 취해 있기만을 바라진 않았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이며, 순교자들의 승리를 경축하지만, ‘이상화’되거나 승리에 도취된 기억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현재의 끊임없는 쇄신 노력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순교할 것인지를 성찰하도록 당부했다.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는 4박5일의 여정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되풀이된 교황의 메시지였다. 교황은 이 연대가 단순히 약간의 물질적 나눔이나 사회 사업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막대한 부요 곁에서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는” 사회, ‘무관심의 세계화’가 만연한 현대 세계와 사회에서, 교황은 모든 인간이 피조물로서의 존엄함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별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정신과 마음에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가 스며들어야 하고, 모든 교회 생활에 이 연대가 반영돼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현대 세계의 유혹에 대한 저항은 교황이 단호하게 권고하는 가장 중요한 투쟁이며, 그 한가운데에는 물질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 사회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고 그 풍요에 빠져 있지만, 정작 부요해질수록 가난한 이들은 더 비참해진다. 사람이 중심에 있지 않은 인간 발전은 결국 사람을 해치게 마련이기에 교황은 물질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간곡하게 당부했다.

무엇보다도 교황은 자비를 바탕으로, 당신으로부터 위로와 치유를 받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망설이지 않고 다가갔다.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이 위로와 위안의 손길과 몸짓은 방한 기간 내내 온 국민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관심, 배려는 교황의 이러한 자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비판

한편 교황은 친절하고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면서도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완곡하지만 날카롭게 피력했다. 특히 교황은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나타난 부조리와 불합리, 불의한 것들에 대해서 조차 매우 깊은 수준까지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행간에 의미를 담아 비판적 발언을 했다.

예컨대, 한국에 도착하던 날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공직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 연설에서 교황은 한국의 사회 문제에 대해,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 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 등을 지적하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한다”고 피력함으로써 밀양, 강정, 쌍용, 4대강 개발 등 지난 수년 동안 이어지면서 국민들을 분열시켰던 주요 문제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교황은 또 같은 연설 뒷 부분에서는 “한국 가톨릭 공동체가 이 나라의 삶에 온전히 참여하기를 계속 열망한다”고 말함으로써 교회의 대사회적 발언과 사회교리의 실천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