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기고] 우리에게 뿌려진 귀중한 ‘씨앗’ / 최성영 신부

최성영 신부 (예수회 성소담당)
입력일 2014-08-19 수정일 2014-08-19 발행일 2014-08-24 제 2909호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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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방한을 앞두고 무수한 말들이 있었다. 그동안 교황님의 성향이나 행보를 볼 때 전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들.

그래서 몇몇 형제들이 모여 “안 되겠다, 안산에 모여 교황님을 기다리자. 지금 우리 사회의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밤새 기도하며 기다리자. 그분은 주무시다가도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면 한밤중에도 일어나 오실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우였다. 그분은 당신이 가시고자 하시는 길을 걸어가셨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셨고, 해야 할 말씀을 다 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위로’였다. 비행기 트랙을 내려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서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 가슴이 아픕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교황님의 왼손은 당신 가슴에 놓여 있었다. 유가족의 아픔을 가슴으로 듣고 계셨다. 그때 내 마음 안으로 한 줄의 성경 구절이 흘러갔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이사야 40,1 참조).

그 후 교황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위로의 마음을 진실되이 건네주셨다. 아픈 이들을 위로해주시는 교황님을 보면서 모든 이가 위로에 위로를 받았다.

위로와 함께 교황님은 우리에게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로 살아가라고 초대하셨다. “순교자들과 지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억은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이상화되거나 승리에 도취된 기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기억한다는 것은 그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머리에 담아두는 기억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할 기억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기억은 희망으로 이어진다.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특히 난민들과 이민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시행하여, 한국교회의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성찰해야 한다. 그동안 무엇을 추구했는지, 무엇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었는지.

우리는 그동안 우리 교회 내에 있는 갈등, 즉 신앙과 정치, 교회와 사회, 이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해 교황님 말씀을 통해 명확히 인식했다.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 하고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이 나라 공직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오늘 저는 한국 가톨릭 공동체가 이 나라의 삶에 온전히 참여하기를 계속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는 그저 교회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를 보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 라는 것. 그렇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인간 전체에 대한 것이다. 믿음과 정의, 둘 중에 하나가 없다면 나머지 하나도 온전할 수 없다.”(예수회35차총회문헌)

교황님의 모든 말씀은 그저 높은 자리에서 메시지를 내려보내는 방식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먼저 그러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초대하셨다. 지극히 육화적인 방식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교황님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 그리고 이 사회에 아주 귀중한 씨앗을 뿌리셨다. 이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잎을 틔우고 자라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간청에 연민과 자비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 강론)

최성영 신부 (예수회 성소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