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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28) ‘제삼천년기’ (1)

전영준 신부
입력일 2014-08-12 수정일 2014-08-12 발행일 2014-08-17 제 290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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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년’ 그리스도인과 전 인류에 특별한 시기
희년의 가장 중요한 의미 ‘모든 주민들의 전적인 해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초기부터 ‘새로운 천년기’ 인식
‘어떤 자세와 생각으로 지내야 할지’ 맞갖은 준비 강조
성령의 은사와 함께 봉사와 사랑 실천하는 삶에 초점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황 재위 17년째인 1994년 11월 10일에 반포한 교서로서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주교, 성직자, 수도자 및 평신도에게 보내진 교황 문헌이다. 이 교서를 통해 교황께서는 새로운 세기인 21세기와 새로운 천 년대인 2000년대를 6년가량 앞둔 시점에서 “그리스도 탄생 후 2000년은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서도 특별한 대희년이 됩니다.”(15항)라고 전망하시면서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언하시고, 그에 대한 준비를 권고하셨다.

그러나 교황께서는 이 문헌에서 2000년을 대희년으로 처음 고려하신 것은 아니다. 교황께서는 재임 초기부터 이미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황 재위 첫째 해인 1979년 3월 4일에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를 반포하셨다. 이 문헌에서 교황께서는 “로마 성 베드로 좌에 맡겨진 보편적 봉사의 직무를 나에게 지우신 이 시기는 사실 이미 서기 이천년에 매우 가깝다”(1항)고 인식하셨다. 아직까지 20세기가 21년가량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황께서는 자신이 20세기의 마지막 교황이 될 것이라고 느끼셨는지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을 위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책무에 대해서 고민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교황께서는 교황 재임 첫해에 과감하게 200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 하시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에게는 그 해가 대희년이 될 것이다”(1항)라고 선언하셨다.

하지만 교황께서는 단순하게 2000년이라는 해가 대희년이라고만 언급하지 않으셨다. 대희년이 될 2000년을 기다리는 시간인 21년을 그리스도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자세로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또한 우리는 어느 면에서 새로운 대림의 계절, 기다림의 계절을 맞고 있다.”(1항) 즉, 그리스도인들이 매해 대림시기에 2000여 년 전에 우리에게 오셨던 예수를 기억하며 앞으로 종말의 시기에 마지막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과 같이 대희년이 될 2000년의 전례력 안에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21년이라는 한정적인 시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한시적으로나마 조금 더 특별하게 기다리자는 가르침을 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한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황 재임 8년째인 1986년 5월 18일에 성령을 주제로 다룬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을 반포하시면서 성령론적 차원에서 대희년를 살펴보고 희년을 맞이할 준비 자세를 고찰하셨다. 교황께서는 이 문헌의 서두에서 이러한 주제를 분명하게 밝히셨다. “인간 가족과 함께 그리스도 이후 2000년의 종결점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이때, 교회는 성령을 선포해야 하는 자신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새롭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사가 2000년대에서 3000년대로 넘어가는 대희년을 경축할 준비를 하려는 것입니다.”(2항) 특히 이 문헌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 내용 중에 제3부에서 성령을 2000년 대희년의 주제로 생각하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상세하게 언급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래 이십 번째의 세기가 거의 끝나가고 삼천년대를 눈앞에 두게 된 이때, 교회가 2000년에 경축하게 될 대희년(大禧年)을 바라보며, 그 생각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성령이십니다.”(49항) “교회는 벌써부터 두 번째 천년대의 대희년을 준비하고 있거니와, 그것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성령론적 특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강생의 신비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50항) “교회는 성령 안에서만 이 희년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51항) “대희년에 드러나게 될 모습 그대로의 교회의 모든 생활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맞이하러 나가는 일을 의미합니다.”(54항) “우리는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영이 원하는 것들’을 강조해야 하겠습니다. 이것들이야말로, 새로운 대림시기라고 하는 밤에 울려오는 신호음으로서, 이 시기가 끝날 때에는, 이천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볼 것입니다.’”(56항) “그러므로 2000년 대희년은 성령의 활동을 통한 해방의 소식을 담고 있습니다.”(60항)

이렇게 문헌의 서두에서 언급하시며 교황께서 마련하고자 하셨던 대희년 경축 준비는 바로 생명을 주시는 성령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교황께서는 이 점을 본문 안에서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강조하셨던 것이다. “교회 또한 이 대희년을 맞이할 자신의 준비를 성령 안에서 하고자 합니다.”(66항) 결국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하게 2000년이라는 숫자에만 시선을 빼앗겨 헛된 종말론에 빠지지 말고, 대희년을 특징짓는 성령의 은사와 더불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삼천년기」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먼저 신구약에 나타난 희년 전통을 살펴보면서 희년의 구세사적 의미를 살피셨다. “희년의 가장 의미심장한 귀결 중의 하나는 자유롭게 되어야 할 모든 주민들의 전적인 ‘해방’입니다.”(12항) 그런데 2000년에 맞이하게 될 대(大)희년은 여느 다른 희년보다도 그 의미가 더욱 크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갈라져 있는 형제들이 대희년을 기회로 삼아 모두 하나 되는 친교를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누구나 기뻐하도록 초대하고 만인이 구원의 힘을 나누어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건을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래서 2000년은 대희년으로 기념될 것입니다.”(16항)

그런데 교황께서는 하느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이미 2000년 대희년의 준비가 시작되었다고 언급하셨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가 2000년의 희년을 위한 더 직접적인 준비를 시작했던 하나의 섭리적 사건이었다고 우리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18항) 왜냐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20세기 전반에 혼란을 경험했던 인류에게 그리스도와 교회 공동체의 신비에 중심을 두면서 인류에게 열린 자세를 취하는 개방의 공의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 전례 개혁을 포함하여 교회의 쇄신을 통해 성성(聖性)으로의 보편적 부르심을 재확인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상이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세상을 향해 새로운 자세로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등의 풍요로운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황께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개최되었던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각 나라 또는 교구 시노드를 통해서도 2000년 대희년의 준비가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회상하셨다. “그래서 2000년 희년의 준비는 세계적이고 지역적인 차원에서 교회 전체에 걸쳐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구원사명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고취시키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21항) 즉,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의 사명을 재천명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 수호를 위한 사회교리에 대한 성찰들을 하면서 대희년 준비에 대한 교서의 전반부를 마친다. “이 준비는 성령께서 교회와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것, 그리고 전체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은사들을 통하여 개인들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것에 대해 더욱더 민감해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23항)

전영준 신부는 1991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재임 초기부터 2000년 대희년에 대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고, 희년을 맞이하는 준비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사진은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대희년 개막미사 전경. 【CNS】

전영준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