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르포] 마음으로 함께한 세월호 참사 100일

성기화 명예기자
입력일 2014-07-29 수정일 2014-07-29 발행일 2014-08-03 제 2906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모든 이들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간 듯 하지만
여전히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
분향소에 조문객 발길 여전
참사 진실 규명 단식 농성 열려
‘사람’이 우선인 사회 형성해야
세월호 참사 100일인 7월 24일 합동위령소에서 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 주례로 추모미사가 봉헌됐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인 7월 24일, 16명의 학생들이 희생된 안산대리구 와동일치의모후본당은 여전히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본당 부설 유치원생 어린이의 재잘거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주일학교 초등부 신앙학교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노인대학 사물놀이 팀이 장구채를 휘두르며 연습이 한창이다.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본당 공동체는 아파하고 있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이번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모습과 이름을 꾹꾹 새겨 놓고 절대 잊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주님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모든 이들을 기억하소서!”라고 적힌 성당 벽면의 노란 현수막이 그들의 결심을 대변한다.

박영이(크리스티나·58)씨는 “하느님 안에서 일치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쓰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이 시대 이 나라의 도덕적 타락을 경고한 주님의 메시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참사의 생채기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성당을 벗어나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로 향했다.

참사 100일임에도 분향소는 평소보다 한적했다. 조문객 다섯 명이 단원고 학생들의 안식을 기도할 뿐이었다. 기자도 다른 조문객들과 함께 영정들 앞에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였다. 부지불식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바로 옆에는 희생자의 부모로 보이는 40대 부부가 서로 얼싸안고 통곡했다. 그들의 아이 영정 아래에는 평소 좋아했던 과자와 사탕이 수북하게 놓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및 특검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가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분향소를 떠나 길거리 위에서 단식 농성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가슴에 묻은 아이들의 안식을 위해서.

부모들의 이러한 노력은 분향소 현장에서도 계속된다. 출구 인근에 ‘세월호 참사 수습 및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대에는 많은 이들이 서명한 종이와 볼펜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엄마 아빠 제주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꿈으로 가는 제주여행 글귀를 보니 감정이 북받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향소를 찾아오는 인원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참사 당시 재빠르게 설치됐던 종교계 부스도 이제는 천주교 부스밖에는 남지 않았다. 다행히 수원교구가 운영하는 천주교 부스에서는 매일 봉헌되는 미사가 유가족들에게는 위로가 된다.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 되던 7월 24일도 오후 8시에 어김없이 미사가 있었다. 총대리 이성효 주교가 주례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 100일 추모미사’에는 250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했다.

이성효 주교는 강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 직후 형성된 ‘사람이 먼저다!’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 그리고 바꾸겠다’라는 국민적 합의가 한 발짝도 진척된 게 없다”며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들 각자의 ‘의식’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 주교는 또 “사람이 먼저가 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하느님 모습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저 건너편 유가족 부스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 지금 우리 사회를 향해 다시금 일깨워주는 간절한 절규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미사가 끝나고 돌아 나오는 길이 야외음악당으로 이어졌다. 양쪽 길가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색, 검정색 리본이 줄지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추모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 같아 보였다.

합동분향소에 방문한 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전하는 애도의 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미사에 참례한 신자

성기화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