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48) 구역장의 영성

입력일 2014-07-29 수정일 2014-07-29 발행일 2014-08-03 제 290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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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장님 남편 되시는군요!
오랫동안 냉담하다가 다시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나는 어떤 계기가 있어서 다시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형제님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남들처럼 저도 직장 생활하랴, 주말이면 친구들하고 취미 활동하랴 바쁘게 살다 보니, 굳이 성당 다닐 마음은 없었어요. 그래도 신부님, 제가 우리 아내의 신앙생활은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어요! 하하하”

“그래도 혹시 자매님이 성당 생활 열심히 하는 것이 은근히 싫어서 신앙에 대해 삐딱한 생각을 가지신 건 아니고요?”

“음, 그런 것도 없잖아 있었지요. 그리고 사람이 평소에 집에 있으면 책도 좀 읽고, 차분히 앉아서 신문도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 두는 것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여편네는 집에서 신문 한 번 앉아서 보는 것을 못 봤어요. 툭하면, 성당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늦게 오면, 자기 할 일 하고 그냥 자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혼자 속으로, ‘저 여자는 성당 때문에 다 버린 것 같아!’하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니 성당에서 뭘 하는지 관심도 없었고, 자기가 좋아서 다니는 것이니까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제발 어디 가서 부끄러운 짓만 안 하고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재작년 성탄 때, 우리 둘째 녀석이 어디 합격을 하고, 그것이 마음속으로 좋은 일이다 싶어, 수십 년 만에 아내랑 함께 성당을 구경 가듯 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지요!”

“몇 수십 년 만에 성당에 갔더니, 성당 마당에서 성모님이 나와서 반겨 주시던가요?”

“에이, 신부님도. 그런데 사실, 그때 성모님이 반겨 준 것이 아니라, 성모님을 닮은 우리 아내의 구역 식구들 모두가 나를 반겨주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사람들마다 나를 보며 ‘아, 우리 구역장님 남편 되시는구나’하면서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다음 말에 또 놀랐지요. ‘우리 구역장님이 정말 좋은 분이라, 함께 사시면 참 행복하시겠어요!’ 그리고 성탄 자정 미사가 끝난 후에 집으로 가려는데 야참이라 떡국도 주셨지요. 그런데 그 날 따라 우리 아내 구역 식구들이 봉사를 하는 날인가 봐요. 그런데 봉사하는 구역 식구들 모두가 우리 아내의 말에 일사천리로 척척 움직이는 거예요. 그리고 아내 얼굴을 봤더니, 어찌 그리 해맑은 미소로 사람을 대하던지! 바로 그 모습에 구역 식구들이 덩달아 행복해 하는 것 같았지요. 그때 알았어요! 우리 아내, 집에서는 신문 하나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이라 늘 무시했는데, 성당에서는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내의 모습 하나하나를 보고 진정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날 나는 봉사 끝날 때까지 지켜봤는데, 우리 아내가 마지막 뒷정리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깨끗이 한 다음, 함께 고생한 구역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탄 인사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그 날, 정말, 내 아내가 그리 멋진 여자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모습이에요!”

구역장인 아내의 겸손하고 따스한 미소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그 남편은 성탄 미사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미사를 빠진 없고, 성실한 신앙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자신의 배우자와 가족에게 우선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봉사의 삶, 이것이야말로 구역장 영성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