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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복음의 기쁨’ 이미 살았던 주문모 신부님 / 황석모 신부

황석모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총원장)
입력일 2014-07-22 수정일 2014-07-22 발행일 2014-07-27 제 290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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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교회는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황님은 방한 중에 124위의 ‘하느님의 종’을 시복하실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시복자 중에 외국인(중국)이면서 사제로 조선에 입국하여, 천주교 신앙을 증거하다가 순교하신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주 신부님은 놀랍게도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반포하신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강조하신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그 당시에 이미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주문모 신부님은 220년 전에 선교사로 조선 땅에 들어오셨고, 초기 천주교 신앙의 선조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온 생애를 바치신 분입니다. 신부님은 조선에 입국하신 후 6년 4개월 동안 박해의 추적을 피해 다니면서도 언제나 복음 전파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에서 순교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낮에는 교우 집 골방에 숨어 신자들을 위한 ‘교리서’ 집필의 시간으로 보냈고, 밤에는 신자들과 함께 성사를 집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열정으로 천주교 신앙 공동체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신부님은 자신을 체포하고자 집요하게 추적하는 박해 당국자를 피해 많은 시간 전국을 떠돌며 숨어 지내야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그 시간들을 자신의 목숨만을 보존하기 위한 은둔의 순간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회를 통해 각 지방의 신앙 공동체를 돌아보며 그들에게 성사를 집행하는 사목 방문의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주문모 신부님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참 모습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특히 주문모 신부님은 조선이 철저한 신분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류했고, 남녀의 차별 없이 모두를 하느님 안에서 귀하고 소중하게 창조된 존재로 대우하셨습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결국 1801년 박해 때 중국으로 건너가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부님은 체포되어 박해를 겪고 있는 동료 신자들의 고통을 멈추고,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고자 박해 당국에 자수한 후 순교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주문모 신부님은 순교 직전 박해 당국자에게 조선 입국의 이유에 대해서 “동국(東國)에 정학(正學)을 전하고자 왔다”고 당당하게 자신의 소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으로서 신부님의 모습에서 교황님께서 늘 강조하신 내용으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자신을 낮추어 이웃을 끌어안는 양들의 냄새’가 나는 삶이(복음의 기쁨 24항) 느껴집니다. 또한 선교자로서 신부님은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위안과 격려가 모든 사람에게 가닿도록(복음의 기쁨 44항) 살았고, 거리의 진흙탕에서 신발이 더럽혀지더라도 좋은 일을 하는 모습을(복음의 기쁨 45항)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순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온 생애를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복음의 기쁨 24항)이라 말씀하신 교황님의 말씀을 주문모 신부님은 실제로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마침내 당당하게 순교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문모 신부님의 삶과 영성을 오늘날 보다 넓고, 깊게 재조명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주문모 신부님의 생애를 알고, 느끼고, 깨달아 우리 모두가 주문모 신부님의 마음을 묵상하면서 그 분의 삶을 닮아갈 수 있기를 다짐해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느님 때문에 이 세상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황석모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총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