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왕따와 공감 / 최현민 수녀

최현민 수녀(씨튼연구원 원장)
입력일 2014-07-22 수정일 2014-07-22 발행일 2014-07-27 제 290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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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치원에서조차 아이들 간 갈등이 폭력이나 왕따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한겨레신문 7월 15일자, 23면) 아이들의 공격적 성향을 나타내는 연령층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과 왕따 논란이 점차 심화되어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얼마 전 강원도 고성 육군 22사단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도 군대에서의 계급 열외(곧 왕따)가 주요 원인이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마음이 위축되고 자기 존재감을 느끼기는 어렵게 된다는 것을 경험해본 이는 잘 알 것이다. 우리도 성장하면서 왕따를 당해보거나 따돌림 당하는 친구를 본 경험이 있지 않나. 그런 친구를 보면서 나는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직접 폭력을 가하진 않았어도 그들을 상대하지 않거나 외면해 버리진 않았던가.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나오는 강도 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쳐버린 사람들처럼 그렇게 방관하고도 별다른 죄책감 없이 지내진 않았나.

현대사회에 들어와 왕따 문제가 더 심각하게 된 것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치열한 경쟁사회가 되어가는 사회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학벌 지상주의라는 교육 환경을 야기시켜 왔고,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교육풍토에 적응치 못하는 아이들은 소외되고 만다. 혹 교사 중에 경쟁에서 뒤처지는 아이를 문제아로 취급하여 지속적으로 야단과 체벌을 가할 때 그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것을 부추길 수 있다. 앞서 말한 총기 난사 사건 역시 상사가 관심병사를 문제아 취급한데에서 야기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상처받은 아이에게 편견을 두고 차별하는 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은 그런 친구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지니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방관하는 다수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가 따돌림 당하는 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방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 곧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역지사지의 능력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때 키워질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얼마나 갖는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나는 얼마나 되돌아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바쁘다는 핑계로 주위에 소외된 이들에게 방관적 태도를 갖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사회 속에 왕따 문제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행복은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자기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망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행복으로부터 멀어짐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원수마저 품어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그 역시 행복해야 할 하느님의 귀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왕따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로움이나 소외를 느끼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끈끈해야 할 우리의 관계망이 느슨해져감으로써 관계망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이 많아져가고 있다.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 살기 바쁜데’라고 속으로 투덜대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주변사람들이 행복해질 때 비로소 얻어지는 ‘선물’이지 내가 싸워 쟁취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러기에 진정 행복해지고 싶으면 우선 주변부터 둘러보라. 혼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이가 있다면 다가가 따뜻한 말 한마디부터 건네 보라. 그 말 한마디에 닫았던 마음의 빗장이 열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가 건네는 말을 귀담아 들어보라. 이렇게 소통의 물꼬가 터질 때 우리는 행복을 향해 한걸음 다가서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공감의 물꼬를 터트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경청의 태도는 소외와 왕따 현상이 심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데 절실히 요청되는 삶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최현민 수녀는 ‘사랑의 씨튼수녀회’ 소속 수녀로, 현재 씨튼연구원 원장과 ‘영성생활’ 편집인 등을 맡고 있다. 서강대 종교학과에도 출강 중이다.

최현민 수녀(씨튼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