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4) 파울 클레와 ‘수호천사’

조수정(미술사학자)
입력일 2014-07-22 수정일 2014-07-22 발행일 2014-07-27 제 2905호 1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천사’는 빛처럼 영원으로 인도하는 희망이었다
독일 나치 탄압서 스위스로 탈출, ‘천사’ 시리즈 28점 완성
삶과 죽음 사이의 불안정한 마음을 천사 그림으로 표출
“예술, 보이는 것 재현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파울 클레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는 독일 국적의 스위스 화가이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결국 그림의 길을 선택해 신비주의 경향을 띠면서도 서정적 아름다움이 넘치는 매우 독특한 추상화풍의 길을 개척했다.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에 가담하기도 했던 그는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 여러 다양한 예술 형태를 받아들였으며, 선과 형태, 그리고 색채의 탐구에 몰두해, 때로는 어린아이의 그림과 같은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을, 때로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칸딘스키와 함께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재직했고 뒤셀도르프의 미술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나치 정권의 탄압이 심해지자 독일을 떠나 스위스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는 죽기 일 년 전, 무려 스물여덟 점의 <천사> 시리즈를 그렸는데, 사망하던 해에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도 네 점의 <천사>를 완성시켰다. 왜 그는 거의 강박적이라 할 만큼 천사라는 주제에 매달렸던 것일까? <미완성의 천사>, <잘 잊어버리는 천사>, <아직 걸음마를 못 배운 천사>, <가엾은 천사>, <아직 여성인 천사>, <전투적인 천사> 등 비전통적이고 기묘한 이름을 가진 천사 시리즈는, 비교적 평탄하고 세속적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거둔 그의 삶이 겉보기와는 달리 내면으로부터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수호천사(Wachsamer Engel)’, 1939, 스위스, 더글라스 쿠퍼(Douglas Cooper) 소장
<수호천사>로 이름 붙여진 작품 역시 이 당시 제작된 것으로서,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눈을 크게 뜬 천사의 모습이 추상화된 형태로 표현되었다. 사람을 선(善)으로 이끌며 보호하고 변호하는 수호천사의 존재는 탈출기 23장에 묘사된 모세와 천사와의 만남을 비롯해, 다음과 같은 성경의 여러 구절을 통해 드러난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시편 91, 11).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 10).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 결국은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들이 아닙니까?”(히브 1, 14).

‘전투적인 천사(Angelus Militans)’, 1940, 베른 미술관, 파울 클레 재단
한편 하느님께서 우리 각 개인에게 특별한 수호천사를 지정해 주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성인들도 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은 “수호천사는 인간의 믿음직한 파수꾼이며 안내자이고 보호자이다.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를 돕고 위안을 주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중개하고자 보내졌다. 그는 우리의 기도와 선행을 하느님께 전달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위협하는 악마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또한 그는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천국의 영원한 행복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며, 특히 임종의 시간에 도움으로써 마지막 목적을 달성한다. 하느님께서 개개인에게 수호천사를 주셨다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착하신 하느님 사랑의 증거이다”라고 하였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피력했던 클레가 <수호천사>라는 작품을 통해 나타내려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미 여러 해 동안 지병에 시달려온 클레는 지상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삶에의 희망과 죽음의 절망 사이에서 느끼는 불안정한 자신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출하였다. 세계 2차 대전 발발 직전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와 신체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클레에게 있어서, 검정 바탕 위에 흰색의 선으로 그려진 수호천사는 어둠과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 마치 한 줄기 빛처럼 그를 영원에의 삶으로 인도하는 ‘희망과 구원’의 상징적 존재였던 것이다.

조수정씨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수정(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