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47) 엄마와 명함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07-22 수정일 2014-07-22 발행일 2014-07-27 제 290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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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에 대하여
서점에 책을 사러 간 적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주제로 어느 잡지에 글을 써야 할 일이 있었는데 때마침 그것과 관련된 신간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에 대형 서점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평일 오후인데도 서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 나는 날씨가 너무 더워 오전 내내 사무실 앉아 찬물을 유난히 많이 마셨더니 배가 아파(?)왔습니다. 그래서 신간 도서를 찾은 후, 다른 책을 고르다 말고 손에 쥐고 있는 책들을 한 군데 잘 놓아두고, 화장실 표지를 찾아 달려갔습니다.

그 서점에는 어린이 도서 코너 옆으로 화장실 표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표지를 찾아가는데, 생각 이상으로 많은 꼬맹이와 어린이들이 바닥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또 한 쪽에서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또 한 쪽에서는 아이와 책을 보는 엄마도 있고, 몇몇 엄마들은 모여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암튼 성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이내 곧 급한 불을 끄고 화장실을 나오려는데 밖에서 몇몇 아이들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화장실 문을 열면 아이들이 냄새(?)에 질식할까 봐, 아이들이 들어왔다가 나갈 때까지 가만히 화장실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소변을 보면서 하는 말을 밖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말을 건넵니다.

“우리 엄마는 명함 있다!”

그 아이는 ‘명함’을 가지고 있는 엄마를 왠지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말을 합니다.

“우리 엄마는 명함 없는데!”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나서서 하는 말이,

“야, 명함이 있다는 것은 밖에서 힘든 일을 한다는 거야!”

그러자 아이들은

“왜?”

“모르겠어? 그건 명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엄마가 평소에 너랑 놀아주지 못한다는 거야!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일하러 나가야 하거든.”

그러자 엄마의 ‘명함’을 자랑하는 아이의 목소리인 듯,

“그렇구나. 그러면 우리 엄마가 그 명함을 빨리 다 썼으면 좋겠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온 아이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이지 이제 갓 유치원 정도나 다닐 정도의 어린 목소리인데, 그것도 소변을 보면서, 부모가 가지고 있는 ‘명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명함’을 통해 지금 현재, 어른들의 힘든 세상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꼬맹이들, 고생하는 자기 엄마 걱정도 할 줄 알고! 다 컸네, 다 컸어!’

성직자, 수도자는 거의 대부분 명함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설령 ‘명함’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업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명함’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명함’ 속에 담긴 절실함은 방금 화장실에서 만난 어린 꼬마들의 마음보다도 더 모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 편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오늘따라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가족을 사랑으로 묶어주시는 주님, 이 세상의 모든 부모가 가지고 있는 명함을 빨리 다 쓰고,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